[예배 설교]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 011920

창세기 강해 (10) –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창 18:1~14

I. 서론

오늘 본문은 아브라함이 99세 때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지난 본문에서 시간이 좀 많이 흘렀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날 때의 나이가 75세였는데, 지금은 아브라함의 나이가 99세입니다. 약 25년이 지난 것입니다. 99세의 아브라함은 많은 식솔들을 거느리고, 많은 재산을 가진 족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읽다가 보면, 아브라함의 행동에 참 많이 놀라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손님 대접을 너무나 정성을 다해서 잘 했기 때문입니다. 신약성경 히브리서에서는 아브라함의 행동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습니다. 히 13:2,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많은 신학자들이 히브리서 본문의 예로 아브라함을 들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오늘 보문에 나오는 손님들을 대접할 때에 이들이 천사라는 것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을 조금 더 자세히 보시면, 아브라함이 대접한 사람은 단순한 천사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하나님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1절, “여호와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날이 뜨거울 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아 있다가)” 이후, 손님들이 아브라함의 대접을 잘 받고, 사라를 찾았습니다. 8~9절, “아브라함이 엉긴 젖과 우유와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들 앞에 차려 놓고 나무 아래에 모셔 서매 그들이 먹으니라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대답하되 장막에 있나이다” 그리고, 손님 중 한 명이 내년 이맘때에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시자, 사라는 그것을 믿지 못하고 웃었습니다. 그러자,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13절,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1절에서는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다고 말하고 있고, 13절에서는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학자들은 본문에 나오는 세 사람 중 한 분은 삼위일체 하나님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라고 설명을 합니다. “세 분 중 두 분은 문자 그대로 천사들이었고, 오직 세 번째 분이 신성이신 예수님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여기서 성육신에 선행하셔서 후에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시기 전에 사람 모양으로 나타나신 것임을 시사합니다.” (James Montgomery Boice) 결국 아브라함이 섬긴 사람은 예수님이었던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에 나오는 이야기를 보면, 부지 중에 예수님을 대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참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두 가지만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동방박사의 이야기이고, 두 번째는 아시시의 프란체스코 이야기입니다. (1182-1226)

성탄절에 나오는 동방박사 이야기는 성경 외에도 여러 개가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원래 동방박사는 세 사람이 아니라 네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네 번째 동방박사가 약품을 들고 출발했다가 도중에 아픈 노인을 만나자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네 번째 동방박사는 아픈 환자를 돌보다가 예수님을 경배하러 가는 일을 포기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온 세상의 구주로 태어나신 예수님을 경배하러 가는 일을 포기하니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엎드려 기도했다고 합니다. “오! 주님, 제가 주님께 드리려고 이 선물을 갖고 길을 떠났는데, 이 환자를 돌보느라 주님을 뵙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주님! 용서해 주세요.” 그런데, 이런 기도를 드린 후, 네 번째 동방박사가 눈을 떴을 때, 자기가 치료하던 노인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자기 앞에 예수님이 나타나 계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미소를 지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너는 나를 돌본 것이란다.”

어느 추운 겨울 밤, 눈이 많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프란체스코가 불을 끄고, 막 잠을 청하려고 하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프란체스코는 순간 귀찮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밤에 찾아온 손님을 그냥 돌려보낼 수는 없었습니다. 불편한 마음으로 잠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습니다. 문 앞에는 험상궂게 생긴 나병환자가 추위에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프란체스코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물었습니다. “무슨 일로 찾아 오셨습니까?” “밖이 너무 추워 몸이 꽁꽁 얼어 죽게 되었습니다. 몸을 좀 녹이고 가게 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나병 환자는 애처롭게 간청을 했습니다. 프란체스코가 나병 환자를 안으로 모시고, 자리에 앉히자, 살이 썩는 고름 냄새가 집안을 진동시켰습니다. “식사는 좀 하셨습니까?” “아니요, 벌써 사흘 째 아무 것도 먹지 못했습니다.” 프란체스코는 내일 아침 식사로 준비해 둔, 빵과 우유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나병 환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빵과 우유를 먹어 치웠습니다. 음식을 다 먹은 후, 나병 환자는 기침을 콜록콜록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밖이 춥고 눈이 많이 내리고 있어서, 도저히 나갈 수가 없습니다. 미안하지만, 하룻밤만 재워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프란체스코는 마지못해 승낙하면서 자신의 침대를 나병 환자에게 내주고, 자신은 바닥에서 잠을 청했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요… 나병 환자가 프란체스코를 깨우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몸이 너무 추워서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습니다. 당신의 체온으로 제 몸을 좀 녹여 주시면 안되겠습니까?” 프란체스코는 나병 환자를 당장 밖으로 내 쫓고 싶었지만,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면서 그의 요구대로 나병 환자와 같은 침대에 누웠습니다. 그리고, 나병환자를 자신의 체온으로 감쌌습니다. 프란체스코는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들었고, 꿈 속에서 누군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프란체스코야, 나는 네가 사랑하는 예수란다. 네가 나를 이렇게 극진히 대접했으니, 하늘에서 네 상이 클 것이다.” 꿈속에서 주님의 모습을 보고, 프란체스코는 깜짝 놀라서 잠자리에서 일어 났습니다. 그런데, 한 침대에서 같이 자고 있어야 할 나병 환자는 온데간데 없었습니다. 그리고, 고름 냄새가 배어 있어야 할 침대에는 향긋한 향기만 남았다고 합니다.

네 번째 동방박사나 프란체스코나 손님을 대접하다가 부지 중에 예수님을 섬기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모습을 보면, 우리가 어떻게 손님을 대접해야 하는지 세 가지 모범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II. 본론

1. 첫째, 아브라함의 섬김

1) 아브라함은 자신의 휴식을 포기하고 손님을 대접했습니다.

1~2절, “여호와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날이 뜨거울 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아 있다가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서 있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지금도 남부 지중해 지역을 여행하다 보면, 뜨거운 태양이 쏟아지는 오후 시간에는 (대략 1~4시 사이) “시에스타(siesta)”라고 해서 낮잠을 잡니다. 이 시간에는 관공서이나 은행이 문을 닫기 때문에 여행객들은 시간을 잘 맞추어서 업무를 보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살던 시대에도 이러한 “시에스타”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1절에 나오는 “날이 뜨거울 때”는 아브라함을 포함한 온 식구들이 낮잠을 자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때 아브라함이 손님들이 발견하고, 정성껏 대접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자신의 달콤한 휴식을 포기하고 손님을 대접한 것입니다. “팔레스타인의 목축업자들은 모두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일을 하기 때문에 오정에는 피곤한 시간이고 또 너무 더워서 잠을 자야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자기 집 앞에 나타난 세 사람을 보고 이들을 외면하지 않고 정성껏 대접했습니다. 아브라함과 그 식구들은 이 세 사람의 불청객 때문에 오정에 잠자는 시간을 완전히 망쳐버렸습니다. 그들은 그 시간에 잠을 자야 오후에 다시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조금도 싫은 기색 없이 이들을 영접하여 대접했고 그 결과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듣게 되었습니다.” (김서택)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적인 손님 대접은 내가 남는 시간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달콤한 휴식 시간을 포기하면서도 손님을 기쁨으로 대접하는 것이 성경적인 손님 대접입니다.

2) 아브라함은 본인이 약속한 것보다 더 많이 베풀었습니다.

3~5절, “이르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시옵고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에서 쉬소서 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당신들의 마음을 상쾌하게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당신들이 종에게 오셨음이니이다 그들이 이르되 네 말대로 그리하라”

아브라함은 손님들에게 두 가지를 제공하겠다고 말합니다. 물을 가져다 드릴 테니 발을 씻으시고 쉬소서 (4절) 떡을 조금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5절) 그런데, 아브라함이 실제로 손님들에게 대접한 것은 무엇입니까? 6~8절, “아브라함이 급히 장막으로 가서 사라에게 이르되 속히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 하고 아브라함이 또 가축 떼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잡아 하인에게 주니 그가 급히 요리한지라 아브라함이 엉긴 젖과 우유와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들 앞에 차려 놓고 나무 아래에 모셔 서매 그들이 먹으니라” 아브라함이 대접한 것은 새롭게 만든 따뜻한 떡,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 고기, 엉긴 젖과 우유였습니다. 여기서 세 스아는 약 18~20리터의 밀가루를 말합니다. 세 명이 한 끼로 먹기는 너무나 많은 양입니다. 아마도 새롭게 떡을 만든 다음, 남은 떡은 손님들의 여행을 위해 싸주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새로 잡은 송아지는 평소 먹는 식단에서 찾아볼 수 없는 것입니다. 평소 식단에서는 이미 잡아 놓은 소고기를 먹습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손님들을 대접하되, 지극 정성으로 대접한 것입니다.

3) 아브라함은 손님들을 기쁜 마음으로 열심히 섬겼습니다.

6~8절, “아브라함이 급히 장막으로 가서 사라에게 이르되 속히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 하고 아브라함이 또 가축 떼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잡아 하인에게 주니 그가 급히 요리한지라 아브라함이 엉긴 젖과 우유와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들 앞에 차려 놓고 나무 아래에 모셔 서매 그들이 먹으니라”

저는 이 구절에서 아브라함의 행동을 묘사하는 동사와 부사에 눈길이 갔습니다. 6절, “아브라함이 급히 장막으로 가서” 7절, “아브라함이 또 가축 떼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8절, “그들 앞에 차려 놓고 나무 아래에 모셔 서매” 아브라함은 손님들이 시장할까 봐 급히 움직였을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은 손님들이 식사할 동안, 서서 그들의 시중을 들었습니다. 여러분, 그림이 그려지십니까? 아브라함은 지금 나이가 99세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수백 명의 식솔을 거느린 족장이었습니다. 창 14장에서 롯을 구할 때, 집에서 길리고 훈련한 318명을 데리고 갔다고 말했습니다. 자신이 거느린 식솔이 남자만 300명이 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99세 노인이, 수많은 식솔을 거느린 족장이 급히 달려가면서 음식을 준비하게 하고, 손님들이 식사할 동안에,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모습에서 손님을 대접할 때, 어떠한 자세로 섬겨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이런 아브라함의 모습을 보시고, 손님 중 한 분인 주님께서 사라를 찾으셨습니다.

2. 둘째, 하나님의 약속과 부부의 반응

8~9절, “아브라함이 엉긴 젖과 우유와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들 앞에 차려 놓고 나무 아래에 모셔 서매 그들이 먹으니라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대답하되 장막에 있나이다”

하나님께서 사라를 왜 찾으셨을까요? 사라에게 내년 이맘때, 아들이 출생할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본문 바로 전 장인 창세기 17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의 출생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창세기 18장에서는 사라에게 이삭의 출생에 대해서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창세기 17장과 18장에서 흥미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창 17장을 읽어 보겠습니다. 1절,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15~17절,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사라라 하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아브라함이 99세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의 반응은 “웃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기쁨의 감격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웃은 이유는 하나님의 놀라운 약속에 대한 기쁨의 표시가 아니었다. 웃음 뒤에 이어지는 아브라함의 의문이 암시하는 바를 생각해 보라. 아브라함은 기가 막혀서 웃은 것이다. 아브라함은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Sidney Greidanus) 그런데, 오늘 본문인 창세기 18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사라가 듣도록 말씀하셨습니다. 10절, “그가 이르시되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주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자, 사라도 아브라함과 똑 같은 반응을 보였습니다. “웃은 것”이었습니다. 11~13절,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에게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는지라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성경을 읽다가 보면, 참 재미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의 나이 99세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아들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웃었습니다. 사라도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내년 이맘때에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사라도 웃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낳은 아들의 이름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웃음”입니다. 이삭의 뜻이 “웃음”입니다.

오늘 본문 11~13절을 보시면, 성경은 아브라함과 사라가 매우 늙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늙다”는 동사의 어근을 세 차례나 사용했습니다. 11절: 나이가 많아 늙었고, 12절: 내 주인도 늙었으니, 13절: 내가 늙었거늘.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에 자신의 늙음을 보고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서 “웃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믿지 못해서 웃는 웃음”을 “기쁨의 웃음”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14절에서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14절,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우리 삶 가운데,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없고, 도저히 믿기지 않아서 의심이 드는 것이 있으십니까? 의심이 들 때마다 우리는 이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3. 셋째, 하나님께서 기적적인 방법을 사용하시는 이유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이렇게 기적적인 방법을 사용하셨을까요? “왜 하나님은 그렇게 오래 기다리셨는가? 아브라함은 100세이고 사라는 90세이다. 생산 능력이 없는 늙은 여인에게서 아이가 태어났다는 것은 이 특별한 아이가 이들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Tremper Longman III) 창세기의 첫 독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을 하면서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바로 홍해라는 바다를 건넌 것입니다. 뒤에서는 이집트의 최강 적군이 칼과 창과 활을 들고 달려들고 있었고, 앞에는 홍해라는 바다가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결국 홍해가 갈라지면서 위기를 넘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런 기적을 베푸셨을까요? 그것 역시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그들이 구원받은 것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말씀은 안 하시지만, 많은 성도님들이 이런 생각을 하실 것 같습니다. 작년에 왔던 감리교회 성도님들이 올해 우리 교회 나오지 않는데, 우리 교회가 살겠습니까? 14절에 보면,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고 말씀하셨는데, 우리 교회도 살 수 있겠습니까? 이런 질문들을 가지고 계실 것입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씀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이 교회를 살려 주실 것입니다. 부흥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이런 어려운 상황을 거치면서 교회가 산다면,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이 교회를 살리신 분이 우리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도록 하시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둘째, 교회가 살고 살지 않고는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의 가정에 그리고 우리의 교회에 찾아오는 손님들을 지극 정성으로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그런 의미에서 복 받은 교회입니다. 왜냐하면, 한 달에 최소한 몇 가정씩은 우리 교회를 방문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손님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으로 섬겨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에 유학생으로 두 청년이 한 달 이상 교회를 꾸준히 나오고 있습니다. 이들도 미국 땅에서 손님이자 나그네들입니다. 이들에게 사랑을 베풀어 주십시오. 예배가 끝나면, 그들의 연락처를 물어보고, 주중에 그들을 만나서 따뜻한 밥 한 그릇이라도 사주십시오. 손님을 대접하는 것은 먼 곳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까운 곳, 내 영역 안에 들어온 사람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러한 단순한 섬김도 행하지 않으면서 우리 교회에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기를 바란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III. 결론

마지막으로 이 말씀만 드리고, 말씀을 맺겠습니다.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란 책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한 무리의 유목민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갑자기 큰 빛이 그들을 에워쌌습니다. 유목민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며 특별히 자기들을 위해 준비된 천상의 메시지가 있을 것을 기대했습니다. 마침내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옵니다. “너희는 지금 가능한 많은 돌을 모으라. 그것들을 너희 배낭 속에 넣으라. 그런 다음, 그것을 짊어지고 하루 동안 걸어라.” 유목민들은 분노와 실망의 마음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어떤 유목민은 노골적으로 불평을 털어 놓습니다. 부와 장수를 가져다 주고 위대한 진리를 듣기를 기대했는데 아무 의미도 없는 힘든 노동만 주어졌을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각자 투덜거리며 마지못해 몇 개의 돌을 주워 배낭에 넣고 길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거친 사막 길을 힘들고 고되게 걸었습니다. 밤이 되자, 잠을 자기 위해 천막을 쳤습니다. 그리고는 배낭에 있는 돌들을 꺼내어 보았습니다. 놀랍게도 그 돌들은 모두가 다이아몬드로 변화되어 있었습니다. 그때 그들은 더 많은 돌을 줍지 못한 걸 후회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에서 섬겨야 할 사람들은 때로는 돌과 같이 느껴질 때가 있을 것입니다. 내 삶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내 짐만 무겁게 하는 존재로 여겨질 때가 있을 것입니다. 어떤 분에게는 개척교회가 돌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섬긴 사람들이 (섬긴 교회가) 결국에는 다이아몬드보다 더 귀한 천국의 상급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번 한 주간 살아가시면서 우리 주위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주님을 대하듯이 섬기십시다. 그리하여, 우리의 삶을 통하여 주님께서 큰 영광을 받으시길 간절히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