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설교] 믿음이 이끄는 삶 – 011220

창세기 강해 (9) – 믿음이 이끄는 삶
창 13:1~18

I. 서론

오늘 본문은 두 인물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아브람과 롯입니다. 지금까지 이 두 사람은 갈대아 우르에서부터 지금 본문의 배경이 되는 벧엘까지 언제나 함께 했습니다. 갈대아 우르에서도 함께 길을 떠나 하란에 도착했고, 하란에서 가나안 땅 세겜, 벧엘, 네게브까지 함께 했습니다. 심지어 가나안 땅에 기근이 들어 아브람이 이집트로 내려갔을 때에도 롯은 함께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 두 사람은 서로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구조가 간단합니다. 1~7절: 아브람과 롯이 서로 갈라지게 된 동기가 나옵니다. 8~9절: 아브람이 서로 갈라질 것을 제시합니다. 10~18절: 롯은 소돔 지역으로 옮기고, 아브람은 헤브론 지역으로 옮깁니다. 그리고, 이후 전개되는 이야기는 이들의 선택에 대한 결과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오늘은 아브람과 롯의 두 인물을 비교하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II. 본론

1. 첫째, 갈라지게 된 동기와 아브람의 제안

1~3, 6~7절, “아브람이 애굽에서 그와 그의 아내와 모든 소유와 롯과 함께 네게브로 올라가니 아브람에게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더라 그가 네게브에서부터 길을 떠나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곧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그 땅이 그들이 동거하기에 넉넉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니라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주하였는지라” 아브람과 롯이 이집트를 갔다가 오면서 수많은 가축과 재물을 가지고 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전에 벧엘에 거할 때는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 이제 문제가 된 것입니다. 아브람의 목자들과 롯의 목자들이 가축에게 먹일 목초지와 물을 놓고 서로 다투게 된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자, 아브람이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8~9절,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아브람이 롯에게 먼저 지역을 선택할 수 있도록 선택권을 주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자, 롯이 소돔이 있는 요단 지역을 선택했습니다. 10~11절,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롯이 소돔이 있는 요단 지역을 선택하자, 아브람은 벧엘에서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거주하게 되었습니다. 18절,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2. 둘째, 선택의 동기와 결과

여기서 우리의 주목을 끄는 장면이 있습니다. 동방 문화에서 아브람은 큰 아버지이고, 롯은 아브람의 조카입니다. 그런데, 아브람이 선택권을 조카 롯에게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롯은 자신이 보기에 좋은 땅을 먼저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중요한 질문을 해야 합니다. 아브람은 왜 조카 롯에서 먼저 선택권을 주었는가? 눈에 보기에 좋은 것을 선택한 롯의 선택이 과연 옳은 것이었는가? 오늘 설교는 이 두 가지 질문에 답하는 내용입니다.

1) 먼저, 아브람은 왜 조카 롯에게 먼저 선택권을 주었을까요?

창 12장에서 아브람은 하나님으로부터 크게 세 가지 약속을 받았습니다: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겠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겠다. 하지만, 가나안 땅에 기근이 들자, 아브람은 하나님을 의심하고 이집트 땅으로 가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집트 땅에서 아브람이 하나님의 기적적인 지키심과 보호하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아내 사래를 되돌려 받았을 뿐만 아니라 셀 수 없는 수많은 가축과 은과 금을 받았습니다. 아브람은 이집트의 왕궁에서 현재 있는 벧엘까지 몇 주 간에 걸쳐서 올라오면서 중간중간에 장막을 치고 잠을 잤을 것입니다. 아브람은 장막에 누워서 자신의 옆에 누워 있는 아내를 보고, 밖에서 들리는 양과 소의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수많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내가 지혜를 짜내고, 내가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야.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보호해 주시면,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약속은 성취될 것이야.” 이런 생각이 들자, 아브람은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었고, 가족 간에 분쟁이 생기자, 조카 롯에게 먼저 선택권을 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앨런 로스, “그는 자기가 그 땅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 자신의 계획을 고집스럽게 지킴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배웠다. 그는 의롭고 관대하게 행동했다. 하나님의 확실한 예비하심을 믿는 자는 탐욕스럽지 않으며 불안해하지도 않는다.”

아브람의 눈에도 요단 지역의 비옥한 땅이 보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브람은 눈에 보이는 것을 따라 선택하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과 섭리를 더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약속을 재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14~17절,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은 먼저 양보할 줄 압니다. 갈등이 있을 때, 내 것을 먼저 취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내 지혜로 어떤 것을 취한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내 것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내가 내 지혜로 얻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축복이 더 값지고 귀한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아브람이 이집트에서 체험했던 것입니다. 이제 아브람은 헤브론으로 이동합니다. 그리고, 이곳이 장차 이스라엘 백성의 선산이 됩니다. 헤브론은 아브람, 이삭, 야곱이 거주한 곳이었고, 아브람, 이삭, 야곱의 무덤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다윗은 유대의 왕이 되었을 때, 이 헤브론에서 왕이 되어, 7년 반 동안 통치를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올 한 해 동안, 하나님의 지키심과 돌보심을 믿으십시다. 그리고 갈등의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내 것을 먼저 양보함으로 평화의 사도로서 올 한 해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2) 이제, 롯에 대해서 살펴 보겠습니다.

롯은 갈대아 우르에서 이집트까지 아브람과 동행했고, 아브람과 똑 같은 것을 보고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롯도 하나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롯에게는 아브람과 같은 믿음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눈에 좋아 보이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10절,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사실, 10절 말씀은 성경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여호와의 동산 같고 / 애굽 땅과 같았다” 지금 소돔과 고모라가 있던 지역으로 알려진 사해를 가보면, 사람이나 짐승이 살 수 없는 곳이지만,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기 전에는 지금도 전혀 다른 모습이었던 것 같습니다. 롯의 이 선택이 결국 롯의 운명을 좌우하게 됩니다. 이후 나오는 롯의 이야기는 이러한 롯의 운명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두 가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롯의 위치 이동과 그 선택의 결과입니다.

(A) 롯의 위치 이동

창 13장부터 나오는 롯의 이야기를 주의깊게 살펴 보면, 롯은 소돔을 중심으로 위치가 이동하게 됩니다. 롯도 소돔이 악한 도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13절,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 하지만, 이집트에서 맛본 풍요를 잊지 못해서 소돔 지역을 선택한 것입니다. 처음에, 롯은 소돔 근처로 이동합니다. 창 13:12,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고 롯은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 Abram lived in the land of Canaan, while Lot lived among the cities of the plain and pitched his tents near Sodom.) 처음에 롯은 소돔 도시 안에 들어가지 않고, 소돔 근처에 살았습니다. 그 이유는 소돔이 지극히 악한 도시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롯은 소돔의 이점은 즐기지만, 소돔의 악에 사로잡히고 싶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변화가 생깁니다. 창 14:12, “소돔에 거주하는 아브람의 조카 롯도 사로잡고 그 재물까지 노략하여 갔더라 / They also carried off Abram's nephew Lot and his possessions, since he was living in Sodom.) 소돔 안에 거주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가 또 다시 변화가 생깁니다. 창 19:1, “저녁 때에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아 있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며 / The two angels arrived at Sodom in the evening, and Lot was sitting in the gateway of the city. When he saw them, he got up to meet them and bowed down with his face to the ground.)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아 있었다는 것은 롯이 소돔의 장로들 중의 한 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성문은 재판을 하는 곳을 의미했습니다. 롯은 소돔 도시 안에 살았을 뿐만 아니라 소돔의 지도자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롯은 소돔 사람 한 명도 변화시키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 사위들도 롯의 말을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롯은 처음에 소돔 근처에 살다가 나중에 소돔 안에 살았고, 나중에는 소돔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소돔의 죄악 속으로 점점 더 빠져 들어간 것입니다. 제임스 몽고메리 보이스는 시편 1편을 쓸 때, 시편 저자가 롯과 그의 실패를 생각하고 지었다고 말합니다. 상당히 설득력 있는 주장입니다. 시 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 Blessed is the man who does not walk in the counsel of the wicked or stand in the way of sinners or sit in the seat of mockers.”

(B) 롯의 선택 결과

그렇다면, 눈에 보기 좋은 것을 선택한 롯의 삶은 어땠을까요? 창 14장부터 나오는 롯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롯이 겪은 풍파에 대해서 3 가지 사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3가지 사건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롯이 두려움을 넘어서는 극심한 공포를 체험했다는 것입니다.

먼저, 롯이 전쟁 포로가 됩니다. 창 14:1~4, “당시에 시날 왕 아므라벨과 엘라살 왕 아리옥과 엘람 왕 그돌라오멜과 고임 왕 디달이 소돔 왕 베라와 고모라 왕 비르사와 아드마 왕 시납과 스보임 왕 세메벨과 벨라 곧 소알 왕과 싸우니라 이들이 다 싯딤 골짜기 곧 지금의 염해에 모였더라 이들이 십이 년 동안 그돌라오멜을 섬기다가 제십삼년에 배반한지라” 동방의 네 왕이 연합으로 소돔 왕과 전쟁을 벌이고 이겼습니다. 그리고 12년 동안, 조공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13년째 되는 해, 소돔 왕이 더 이상 조공을 바치지 않자, 동방의 네 왕이 다시 소돔을 쳐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롯이 이 전쟁에서 포로가 되었습니다. 창 14:11~12, “네 왕이 소돔과 고모라의 모든 재물과 양식을 빼앗아 가고 소돔에 거주하는 아브람의 조카 롯도 사로잡고 그 재물까지 노략하여 갔더라” 롯이 전쟁 포로가 된 것입니다. 언제 어떻게 죽을 지 모를 목숨이 된 것입니다. 만약 아브람이 롯을 구하러 오지 않았다면, 롯은 동방으로 끌려가던 도중, 살해를 당했거나 동방에서 평생 노예로 살아야 했을 것입니다.

또한, 롯은 소돔 사람들로부터 위협을 받게 됩니다. 창 19:1~5, “저녁 때에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아 있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며 이르되 내 주여 돌이켜 종의 집으로 들어와 발을 씻고 주무시고 일찍이 일어나 갈 길을 가소서 그들이 이르되 아니라 우리가 거리에서 밤을 새우리라 롯이 간청하매 그제서야 돌이켜 그 집으로 들어오는지라 롯이 그들을 위하여 식탁을 베풀고 무교병을 구우니 그들이 먹으니라 그들이 눕기 전에 그 성 사람 곧 소돔백성들이 노소를 막론하고 원근에서 다 모여 그 집을 에워싸고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오늘 밤에 네게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롯이 자신의 집에 들어온 두 천사 (손님)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들을 이끌어 내지 않자, 소돔 사람들이 집 대문을 부수려고 했습니다. 창 19:9, “그들이 이르되 너는 물러나라 또 이르되 이 자가 들어와서 거류하면서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 이제 우리가 그들보다 너를 더 해하리라 하고 롯을 밀치며 가까이 가서 그 문을 부수려고 하는지라” 만약 솔리비타에 있는 모든 남자들이 밤에 여러분 집 앞에 모여서 고함을 지르면서 여러분을 해하려고 하고 여러분의 집 문을 부수고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다. 그 지역에 여러분을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것은 두려움을 넘어서는 공포임에 분명합니다.

마지막으로 롯은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으로 극심한 공포를 경험했습니다. 창 19:30, “롯이 소알에 거주하기를 두려워하여 두 딸과 함께 소알에서 나와 산에 올라가 거주하되 그 두 딸과 함께 굴에 거주하였더니” 롯이 천사의 도움으로 소알이라는 도시에 들어갔다가 산으로 올라가서 동굴에 거주하게 됩니다. 롯이 이렇게 한 이유는 소돔과 고모라가 파괴되는 하나님의 심판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킨 심판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대부분의 신학자들이 지진이라고 생각합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지진이 발생하여 건물이 땅 속으로 들어갔고, 땅 속에 있던 유황과 불이 공중으로 솟구쳐 하늘에서 떨어진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건물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롯은 소알도 더 이상 안전한 곳이 아니라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산 속, 동굴로 피하여 들어간 것입니다.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과 같다고 해서 소돔으로 갔지만, 롯의 종착지는 “동굴”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롯의 추락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아내가 소금 기둥이 되어 죽었고, 딸들이 롯과 동침하여 모압과 벤암미를 낳게 되었습니다. 창 19:31~38, “큰 딸이 작은 딸에게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늙으셨고 온 세상의 도리를 따라 우리의 배필 될 사람이 이 땅에는 없으니 우리가 우리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동침하여 우리 아버지로 말미암아 후손을 이어가자 하고 그 밤에 그들이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큰 딸이 들어가서 그 아버지와 동침하니라 그러나 그 아버지는 그 딸이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이튿날 큰 딸이 작은 딸에게 이르되 어제 밤에는 내가 우리 아버지와 동침하였으니 오늘 밤에도 우리가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네가 들어가 동침하고 우리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후손을 이어가자 하고 그 밤에도 그들이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작은 딸이 일어나 아버지와 동침하니라 그러나 아버지는 그 딸이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롯의 두 딸이 아버지로 말미암아 임신하고 큰 딸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모압이라 하였으니 오늘날 모압의 조상이요 작은 딸도 아들을 낳아 이름을 벤암미라 하였으니 오늘날 암몬 자손의 조상이었더라” 롯의 딸들은 소돔과 고모라 지역이 지진으로 멸망할 때, 온 세상에 종말로 온 것으로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소돔에서 그들이 본 근친상간을 그대로 그의 아버지에게 행하여 자식을 낳게 됩니다. 그래서 생겨난 민족이 바로 모압 족속과 암몬 족속이었습니다. 어떤 신학자는 이 부분을 입에도 담긴 힘든 이야기라고 말을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런데, 그것 아십니까? 이 이야기에 반전이 있습니다. 바로, 모압 족속에서 “룻”이 태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마태복음을 보면, 이 “룻”이 예수님의 족보에 이름을 올리고, 예수님의 조상이 됩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하게 되었을까요? 룻이 믿음이 이끄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룻 1:16~17,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룻은 어머니 나오미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룻은 어머니 나오미를 떠나는 순간, 하나님을 더 이상 섬길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오르바는 재혼하기 위해서 다시 모압 땅으로 돌아갔지만, 룻은 자기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났던 것입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룻의 앞날을 책임져 주셨습니다. 룻은 롯의 후손이었지만, 롯보다 아브람과 더 닮아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롯은 아브람을 떠났으면 안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브람을 떠나는 순간 하나님을 더 이상 섬길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목자들의 다툼으로 아브람이 롯에게 자신을 떠나라고 말했을지라도, 롯은 아브람 곁에 있었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아브람이 바로 복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창 12: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우리의 복의 근원은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엡 1:3~6,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하여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는 구원을 얻을 수 있고,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을 보면, 예수님이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지가 나무를 떠나서는 생명을 얻을 수 없고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일이 있어서도 예수님을 떠나지 마십시다. 그리고, 한 단계 더 나아가서, 예수님을 알려주는 교회를 떠나지 말고, 예수님을 잘 믿도록 도와주는 우리 주위의 신앙의 멘토나 친구를 떠나지 마십시다.

III. 결론

마지막으로 이 말씀만 드리고 말씀을 맺겠습니다. 모세가 창세기를 기록하면서 아브람과 롯의 이야기를 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들려 주었을까요? 이들의 상황이 아브람과 롯의 상황과 너무나 유사했기 때문입니다. 아브람과 롯이 이집트에 갔다 온 이유는 가나안 땅에 기근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야곱과 그의 가족이 이집트에 들어갔다가 이스라엘이라는 큰 민족을 이루어 출애굽한 이유도 가나안 땅에 기근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람과 롯이 벧엘에 와서 아브람은 믿음을 선택하여 가나안 땅에 머물렀지만, 롯은 눈에 좋아 보이는 것을 선택하여 요단 동편으로 가 버렸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아브람처럼 믿음의 선택할 할 수도 있었지만, 롯처럼 자신의 눈에 좋아 보이는 우상을 섬기거나 이방 여인과 결혼할 수도 있었습니다. 모세는 아브람과 롯의 삶을 비교하면서 이들에게 무엇이 생명의 길인지를 설명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올 한 해 살아가면서 우리 앞에 수많은 선택의 상황이 펼쳐질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성경은 오늘 말씀을 통하여 그 결과를 이미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길과 진리와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선택하십시다. 그래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참된 평안과 축복을 받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