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설교] 부르심과 지키심 그리고 믿음의 길 – 010520

창세기 강해 (8) – 부르심과 지키심 그리고 믿음의 길
창 12:1~20

I. 서론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인 창세기 12장 2~3절은 성경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 중 하나입니다. 많은 신학자들이 창세기 12장 2~3절의 중요성을 말했는데, 유독 제 눈길을 사로잡은 설명이 있었습니다. 성결대학교 전정진 교수의 말입니다. “창세기 12장 2~3절의 이 약속은 성경 전체의 메시지를 압축적으로 요약하는 신구약 성경의 가장 중요한 구절들 중의 하나다. 창세기 12장 4절부터 요한계시록까지는 창세기 12장 2~3절이 어떻게 성취되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엄청난 말입니다. 창 12:2~3절이 성경 전체의 타이틀이라면, 이 타이틀이 어떻게 성취되는지가 이후 성경에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질문을 하나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창세기 12장4절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 전체에서 핵심적으로 들려주는 메시지가 있는가? 만약 있다면, 그 메시지는 무엇인가?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런 메시지는 있습니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오늘 설교 제목에 그대로 나와 있습니다. “부르심, 지키심, 믿음의 길”입니다. 창 12장 2~3절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창 12장 전체를 이해해야 하는데, 창 12장의 구조를 보면, 이것을 보다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는 사건 (1~3) / 아브람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사건 (4~9) / 하나님께서 지켜주심으로 아브라함이 사래를 바로에게 빼앗겼다가 구원받은 사건 (10~20절)”

II. 본론

1. 먼저, 부르심입니다.

1~3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크게 두 번 부르셨습니다. 첫 번째는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 있을 때였고, 두 번째는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을 때였습니다. 지도를 한 번 봐 주시기 바랍니다. 방금 우리가 읽은 본문은 아브람이 하란에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신 장면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택하신 이유가 아브람의 집안이 대단해서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아브람의 집안은 갈대아 우르에서 우상을 숭배하던 집안이었습니다. 수 24:2~3,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옛적에 너희의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버지, 나홀의 아버지 데라가 강 저쪽에 거주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내가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을 강 저쪽에서 이끌어 내어 가나안 온 땅에 두루 행하게 하고 그의 씨를 번성하게 하려고 그에게 이삭을 주었으며” 하나님께서는 우상을 섬기던 집안인 아브람에게 친히 나타나시고 말씀하셔서 그를 부르셨습니다. 행 7:2~4, “스데반이 이르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이르시되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의 아버지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지금 사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

우리는 왜 하나님께서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서 아브람을 택하셨는지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창세기를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고,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주권으로 아브람을 택하셨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이 이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보시면, “내가” “I will”이 반복되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을 영어 성경으로 읽으면, 강조점이 보다 명확해 집니다.

1. The LORD had said to Abram, "Leave your country, your people and your father's household and go to the land
I will show you.
2. I will make you into a great nation and
I will bless you;
I will make your name great, and you will be a blessing.
3. I will bless those who bless you, and whoever curses you
I will curse; and all peoples on earth will be blessed through you."
7. The LORD appeared to Abram and said, "To your offspring
I will give this land." (So he built an altar there to the LORD, who had appeared to him.)

그러므로, 창세기 12장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아브라함의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이것은 미스터리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미스터리가 이후에 나오는 성경 전체에서도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구약과 신약에서 각 두 명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부르셨을까요? 모세는 사람을 죽인 살인자였고, 도망자였습니다. 40년 동안 광야에서 양이나 돌보던 80세된 노인이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부르셨을까요? 다윗은 베들레헴 촌 동네 사람이었고, 집안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던 막내였습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부르셨을까요? 베드로는 성격이 급한 사람이었고, 갈릴리 어촌에서 생선을 잡던 어부였습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바울을 부르셨을까요? 바울은 스데반을 죽이고, 교회를 박해하던 핍박자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셨을까요? 우리의 집안이 좋아서 우리를 부르셨습니까? 우리가 다른 사람보다 의롭고 경건해서 우리를 부르셨습니까? 미스터리입니다. 우리 마음을 감동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도록 하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2. 둘째, 믿음의 길입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믿음으로 순종하여 갈대아 우르를 떠났고, 하란을 떠났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믿음에 관해서 분명하게 말하고 있는 부분이 두 가지 있습니다. 믿음의 길에는 고난이 있다는 것과 믿음은 계속해서 성장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셨을 때, 아브람은 갈대아 우르를 떠났습니다. 결코 쉬운 떠남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갈대아 우르는 세계에서 가장 세련된 도시 중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Tremper Longman III, “우르는 극도로 세련된 도시였다. 우르의 유적지가 이라크에서 발견되었다. 아브라함 시대에 수메르인들이 오래 전에 건설한 우르는 이미 하나의 고대 도시였다. 우르는 문명의 절정이었다. 고대 근동에서 우르라는 이름을 듣는 것은 뉴욕이나 런던이나 동경이나 그 외 현대 문명의 중시의 이름을 듣는 것과 같았을 것이다.”

아브라함이 도시의 문명 생활을 누리다가 광야와 같은 시골로 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습니다. 더군다나, 우르는 그의 고향이었고, 친척이 있던 곳이었습니다. 비교의 대상은 아니지만,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뉴욕이나 보스턴에 살다가 겨울에 올랜도로 몇 달 와 있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골프고 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발달된 도시 문명과 가족 친척들이 있는 뉴욕과 보스턴을 완전히 정리하고 올랜도로 완전히 내려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그것을 했다는 것입니다. 4절,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그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가나안 족속들이 섬기던 우상을 섬기지 않고, 가는 곳마다 오직 하나님께만 제단을 쌓고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6~9절,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

그런데 이것이 어찌 된 일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모든 것을 포기하고 가나안 땅에 들어왔고, 가는 곳마다 오직 하나님만 예배했으면 모든 것이 형통해야 되는 것이 아닙니까? 아브람이 직면한 현실은 정반대였습니다. 가나안 땅에 극심한 기근이 든 것이었습니다. 10절,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아브람의 마음에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여러분이라면 어떤 생각이 들 것 같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모든 것을 다 버리고 하나님께 순종했는데, 결과는 극심한 기근입니다. 본문을 잘 보시면, 아브람의 행동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기근이 만나기 전에는 아브람이 말씀을 따라 갔고,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4 / 7, 8) 하지만, 기근을 만나자, 이 두 가지가 보이지 않습니다. 말씀을 따라 갔다는 말이 없고,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다는 말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집트로 내려가 버렸습니다. 아브람은 이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Tremper Longman III, “우리 자신이 아브라함의 처지가 되어 보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분의 명령에 순종했다. 우리는 그분이 약속하신 땅에 이르렀지만, 그 곳이 좋은 곳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한다. 하나님은 적어도 그분을 신뢰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속이는 자 같으며, 아브라함도 그분을 신뢰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게 분명하다. 우리는 아브라함이 애굽에 내려간 후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전략을 꾸미는 모습에서 이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사라의 미모 때문에 자신의 생명을 잃을까 봐 두렵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을 돌보시고 지키시리라고 믿고 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이 때 아브람은 어떻게 행동했어야 했을까요? James Montgomery Boice, “하인 한 명이 아브람에게 와서는 이제 일주일치 먹을 식량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아브람은 “그들에게 7분의 1의 양식을 주어라”라고 대답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제 3일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3분의 1을 주거라.” “그러나 아브람이여, 이제 양식이 단 하루치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먹고 나면 아무 것도 없게 됩니다. 짐승과 사람들이 모두 죽을 것입니다.” 아브람은 이렇게 말했어야 합니다. “그것을 모두 주거라. 하나님이 예비해 주실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가르치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아브람의 믿음은 아직 충분히 성장하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대신에 그는 자신을 의지했고, 은혜의 장소에서 빗나가 버렸습니다.”

사실 우리는 아브람의 상황을 잘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 중 누구도 하루치 양식만 가지고 산 사람이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중 누구도 아브람을 비난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도 이런 말씀을 전하기는 쉬워도, 이런 말씀을 내가 정말 실천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성경을 계속 읽어 나가다 보면, 아브람이 이와 비슷한 상황에서 자신의 믿음이 성장했음을 증명하는 사건이 나옵니다. 바로 자신의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칠 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이삭을 통하여 온 열방이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삭이 바로 하루치밖에 남지 않은 식량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이 성장한 아브람은 비록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이삭을 제물로 바쳐도 하나님께서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을 믿었습니다. 히 11:17-19,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믿음은 지금 어느 단계에 와 있습니까? 좋은 상황에서는 하나님을 잘 따르다가도 삶의 기근을 만나면 더 이상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 것은 아닙니까? 아니면, 나에게 하루치밖에 식량이 남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그 일을 통하여 역사하실 것을 믿으십니까? 중요한 것은 믿음의 첫 발을 떼는 것입니다. 이동원목사님의 책에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에디슨 전구 실험에 성공했다. 하지만, 얼마나 희미한지 촛불을 켜놓고 볼 수 있었다. 라이트 형제은 첫 비행에 성공했다. 하지만, 공중에 불과 12초 머물다가 떨어졌다. 최초의 스팀 배는 뉴욕에서 알바니를 가는데 지금 같으면 3시간이면 가는 거리를 30시간 걸렸다. 최초의 자동차는 마차와 같이 출발하면 마차가 먼저 도착했다. 마부들이 자동차를 비웃었다. 불완전해도 괜찮다. 믿음의 첫 걸음이 중요하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의 첫 발걸음을 뗍시다. 그리고 올 한 해 동안, 계속해서 우리의 믿음을 성장시키십시다.

3. 셋째, 지키심입니다.

아브람은 심한 기근으로 사람과 가축이 모두 죽게 되자, 이집트로 내려가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브람의 아내 사래가 너무나 미인이어서 아브람이 사래의 남편인 것을 알면, 이집트 사람들이 아브람을 죽이고 사래를 빼앗아갈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아브람은 자신의 지혜를 짜내어 그 당시 결혼 문화를 이용하고자 했습니다. 당시 결혼 문화에서는 여동생의 오라버니가 여동생의 결혼에 대해서 여동생의 결혼 상대자와 결혼 지참금에 대해서 흥정을 했다고 합니다. 아브람은 사래를 여동생이라고 소개하고, 사람들이 접근을 해 오면, 그들과 흥정하면서 시간을 벌 생각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안정이 되면 바로 이집트를 떠나려고 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사래가 얼마나 미인이었던지 이집트 왕궁에서 사래를 데리고 간 것입니다. 이집트 왕궁은 아브람이 흥정할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것입니다. 아브람은 기근을 만났을 때,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자신의 지혜를 믿고 행동했습니다. 그 결과는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실 때 하신 약속이 깨질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만약 이집트 사람이 사래를 취하여 그녀로 잉태하게 하면, 아브람은 사래를 잃어버릴 것이고, 이들 부부에게서 한 민족이 나오리라는 약속은 깨어지고 말 것입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개입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들 부부를 지켜 주셨습니다. 17절,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이 사건은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하신 약속의 성취가 아브라함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하나님의 능력에 달려 있는 것임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이것이 바로 창 12장이 이후에 나오는 성경 전체의 주제가 될 수 있는 이유입니다. 마치 무거운 추를 바다에 던지면, 추가 가라앉게 되지만, 그 추에 나뭇가지를 묶어서 던지면, 나뭇가지의 크기에 따라 추가 가라앉지 않는 것과 똑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은혜의 줄로 묶어 주신 것입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지키심으로 사래를 구원했을 뿐만 아니라 이집트 사람들로부터 엄청난 물질을 받아서 가나안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창 13:1~2, “아브람이 애굽에서 그와 그의 아내와 모든 소유와 롯과 함께 네게브로 올라가니 아브람에게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더라” 아브람이 쫄딱 망했다가 갑부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의 지키시는 은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다함 없는 주님의 은혜가 2020년 올 한해 우리 모든 성도님과 자녀들 위에 있기를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