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설교] 부활의 조력자들 – 042119

부활의 조력자들
요 19:38~42

I. 서론

농구의 황제 “마이클 조던”이 지난 주에 극찬한 경기가 있었습니다. “To me, it was the greatest comeback I’ve ever seen.” (나에게는, 이 경기가 지금까지 내가 본 경기 중, 가장 위대한 재기 경기였다) 이 경기는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타이거 우즈가 마스터스에서 우승한 것을 두고 한 말입니다. 문자 그대로 골프 황제가 부활절을 앞두고 부활을 한 경기였습니다. 우즈는 어릴 때부터 골프 신동으로 불렸습니다. 생후 22개월 때, 마이클 더글라스 쇼에 출연하여 골프 스윙을 시범보였고, 8살 때, 생애 첫 홀인원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주니어 골프와 아마추어 골프를 모두 석권하고, 20살 때, 프로에 뛰어 들어서 데뷔 첫 해 마스터스 대회에서 18언더파를 쳐서 2위와 12타수차로 우승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해 4승을 거두어서 올해의 선수상, 올해의 신인왕을 모두 차지했습니다. 통합 79승을 거뒀지만, 이혼과 수술 등으로 2005년 이후로 마스터스에서 우승이 없었습니다. 어떤 기록을 보니까, 지금까지 무릎 수술 3번, 척추 수술 4번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난 주일에 14년만에 마스터스에서 다시 우승을 차지한 것입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요? 많은 요소들이 있지만, 모든 기사에서 두 사람을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을 봤습니다. 우즈의 애인인 “에리카 허먼(Erica Herman)”과 우즈의 캐디인 “조 라카바(Joe LaCava)”였습니다. “에리카 허먼”은 우즈의 자녀들을 돌보고, 우즈가 정신적으로 힘들 때, 우즈가 정신적으로 안전을 찾도록 도움을 주었습니다. “조 라카바”는 2011년부터 우즈와 함께 한 인물로서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우즈가 대회에 출전하지 못할 때에도 다른 선수들의 영입 제의를 뿌리치고 우즈에 대한 의리를 지킨 사람이었습니다. 만약, 이 두 인물의 조력이 없었다면, 우즈의 마스터스 우승은 없었을 것이라는 것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하는 것 같습니다.

II. 본론

1. 첫째, 두 명의 조력자: 요셉과 니고데모

예수님의 부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두 명의 인물이 나옵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였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예수님의 제자였지만, 유대인이 두려워서 숨어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38~39절,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두려워 숨기더니” “밤에 찾아왔던” 하지만, 결정적인 상황에서 이 두 사람은 자신의 지위와 재산을 내놓았습니다.

1) 먼저, 지위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 두 사람은 공통적으로 산헤드린 공의회 의원이었습니다. 막 15:43,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경 받는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여기서 “공회원”이라는 말은 산헤드린 공의회 회원이라는 말입니다. 요 3:1,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유대인의 지도자”라는 말은 영어로 “a ruler of the Jews”라는 말인데, 이것은 니고데모가 산헤드린 공의회 회원이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산헤드린 공의회란 70명 (혹은 71명)으로 구성된 유대의 입법과 사법을 총괄하는 최고의 정치 종교 기구였습니다. 대제사장이 의장이 되었고, 제사장, 장로, 서기관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종교와 일상에 관한 모든 일에 대하여 재판을 하고, 사형을 제외한 모든 형을 집행할 수 있었습니다. 온 나라에서 오직 70명만 뽑힐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의 지위는 막강했습니다. 그런데,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가 산헤드린 공의회 회원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산헤드린 공회 의원 두 명이 예수님의 장례를 치른 것입니다. 이러한 행동은 요셉과 니고데모에게 상당한 위험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은 이 두 명이 속한 산헤드린 공의회의 결정이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정상적인 재판을 아니었지만) 마 26:58~59, “베드로가 멀찍이 예수를 따라 대제사장의 집 뜰에까지 가서 그 결말을 보려고 안에 들어가 하인들과 함께 앉아 있더라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거짓 증거를 찾으매”

2) 또한, 이들은 자신의 지위만 내려놓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재산도 내려놓았습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자기 자신을 위해 오래 전부터 준비한 새 무덤을 예수님을 위해 내놓았습니다. 마 27:59~60, “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깨끗한 세마포로 싸서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 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장례를 위해서 향품을 준비해서 왔습니다. 39절,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몰약과 침향은 시체에 바르는 향품입니다. 백 리트라는 약 75파운드 (34킬로그램)입니다. 이 양은 보통 사람을 매장할 때, 사용되는 양이 아니라 왕을 매장할 때 사용하는 엄청난 양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이 예수님의 시신을 수습하고 장례를 치러드린 것입니다. 그런데, 신약성경을 자세히 보면, 이 두 사람이 사용한 빈 무덤과 수의가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로 사용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두 사람은 부활의 조력자라고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2. 둘째, 두 개의 증거: 빈 무덤과 수의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는 우리의 신앙을 말하기 이전에 이것이 사실인지를 먼저 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신앙은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이라는 전제 하에서 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이 아니라면, 우리의 믿음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한국에서 최근 베스트셀러가 된 책 중에 라는 책이 있습니다. Factfulness라는 단어는 원래 영어 사전에 있는 단어가 아니고, 이 책의 저자인 한스 로슬링 (Hans Rosling)이 지어낸 단어입니다. 한스 로슬링은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뽑힌 사람이고, 스웨덴 통계학자이자, 의사였습니다. 이 책이 유명해진 이유는 마이크로소프트 전 회장이었던 빌 게이츠 때문입니다. 빌 게이츠는 2010년부터 대학 졸업철인 5~6월에 대학생이 읽으면 좋은 책을 추천해 왔습니다. 그런데, 2018년에는 책을 추천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개인 블로그 “게이츠 노트”에 졸업을 인증하는 모든 학생들에게 이 책을 전자책으로 선물했습니다. 빌 게이츠가 보기에 이 책은 모든 대학을 졸업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만큼 중요한 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자 한스의 주장은 간단합니다. 무엇을 말하거나 의견을 제시할 때는 현실에서 확인한 팩트를 근거로 하라는 것입니다. 책에 많은 이야기가 나오는데, 한스가 보초 의사로 근무하던 시절에, 팩트에 근거하지 않은 황당한 진로를 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1975년 10월 7일, 환자의 팔에 깁스를 하고 있는데, 간호사가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비행기가 추락해서 부상자들이 지금 헬리콥터로 오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한스는 스웨덴의 작은 해안 도시에 있는 응급 병동에서 전공의를 시작한 지 5일째 되던 날이었습니다. 다른 상급 의료진은 모두 식당에 내려간 상태였기 때문에, 간호사와 한스 자신이 이 사태를 처리해야 했습니다. 곧바로 들것이 들어왔습니다. 거기에는 상하의가 짙은 녹색 옷에 얼룩진 구명조끼를 입은 남자가 실려 있었습니다. 그의 팔다리는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기 때문에 간질 발작이라고 생각하며 옷을 벗기려고 했지만, 우주복처럼 상하의가 한데 붙은 옷은 튼튼한 지퍼가 사방에 있어서 어떤 지퍼로 옷을 벗겨야 하는지 도무지 말 수가 없었습니다. 잠시 후에야 공군 조종사 옷이겠구나 싶었는데, 그 순간 바닥에 흥건한 피가 보였습니다. 이 정도 출혈이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환자가 죽을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옷을 벗기지 못해서 어디에서 출혈이 생겼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한스는 환자에게 소리쳤습니다. “다친 곳이 어디에요?” 그가 대답했지만,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고, 러시아어 같았습니다. 그래선 한스는 러시아어로 또박또박 말을 했습니다. “진정하세요. 여기는 스웨덴 병원입니다.” 순간 환자는 겁에 질려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환자가 무엇이라고 말을 했지만, 역시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한스가 생각하기에 이 환자는 격추당해 스웨덴 영토에 떨어진 러시아 공군조종사가 분명했습니다. 한스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러시아가 우리 스웨덴을 공격했다는 말인가? 아, 제3차 세계 대전이 일어났구나!” 한스는 공포에 질려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습니다. 그때 다행히 수간호사 비르기타(Birgitta)가 점심 식사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비르기타는 깁스 절단기를 한스의 손에서 빼앗은 후, 이렇게 말했습니다. “공군 전투복 G슈트에요. 잘못하면 1만 스웨덴 크로나를 물어내야 해요.” 수간호사는 이렇게 호통을 친 뒤, 조용히 전투복을 벗긴 다음, 담요 두 장으로 환자를 감싸면서 스웨덴어로 말했습니다. “23분 동안 얼음처럼 차가운 물에 있어서 경련이 일고, 몸이 떨리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당신의 말을 알아듣기 힘든거에요.” 한스가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그가 초기에 판단한 것은 모두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그는 러시아 사람이 아니라 스웨덴 사람이었고, 전쟁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평화로운 시기였으며, 간질 발작이 아니라 추위에 몸을 떨었던 것이고, 피는 구명조끼 안에 들어있던 컬러 앰풀이었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의 결론은 한스의 믿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팩트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런던 대학교, 법대 교수인 노먼 앤더슨 (Norman Anderson)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책: 부활의 증거> “부활이라는 메시지는 역사상 최고의 사실이거나 아니면 어마어마한 거짓말이다. 사람들은 부활이 그저 영적 의미가 풍성한 아름다운 이야기이기 때문에 “부활이 문자 그대로의 사실이건 아니건 무슨 상관입니까?”하고 묻는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문제의 핵심을 잃어버리고 만다. 만약 부활이 참이라면, 그것은 역사상 최고의 사실이 될 것이며, 우리의 삶을 부활의 의미에 맞게 조정하지 못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손해를 보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것이 거짓이라면, 기독교라는 종교는 엄청난 거짓말쟁이들의 사기극이 되고 말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질문을 한 가지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인지 알 수 있을까요? 성경의 기록과 사람의 변화를 따져봐야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기록이 믿을 수 있는 내용인지,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살아계시다면, 사람들이 예수님을 통하여 변화되고 있는지. 이것을 따져봐야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팩트라고 말해주는 가장 좋은 기록은 빈 무덤과 예수님의 수의입니다.

1) 빈 무덤

빈 무덤은 사복음서에서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것이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예수님께 제공한 그 무덤입니다. 요 20:1~8,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새 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가서 먼저무덤에 이르러 구부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니 시몬 베드로는 따라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쌌던 대로 놓여 있더라 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을 제외하고, 빈 무덤이 될 가능성에는 어떤 경우가 있을까요? 크게 3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께서 실제로 죽지 않으셨고, 살아 있었다. 그리고, 제 발로 걸어 나왔다. 둘째,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들이 시체를 훔쳐갔다. (로마 당국, 유대 종교지도자) 셋째, 예수님의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간 후, 부활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1) 첫 번째 설은 예수님께서 살아있었고 스스로 무덤에서 걸어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십자가에 6시간 못 박힌 사람이 치료도 받지 못했고, 물과 음식 없던 깜깜한 바위 속 무덤에서 삼일 동안 살아있다가, 무덤을 가로막은 돌을 굴러서 걸어나왔다는 것은 부활보다 더 믿기 힘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만에 하나 예수님께서 살아나오셨다고 하더라도 그 몰골은 사망의 권세를 깨고 부활하셨다고는 믿을 수 없는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2) 두 번째 설은 예수님을 처형한 사람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처형한 사람들은 로마 정부였고, 이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이유는 민란이 일어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로마 당국의 입장에서는 굳이 죽은 사람의 시체를 훔쳐가서 소란을 일으킬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유대 종교지도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빌라도를 찾아가서 빌라도에게 무덤을 지켜달라고 요구를 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마 27:62~66, “그 이튿날은 준비일 다음 날이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함께 빌라도에게 모여 이르되 주여 저 속이던 자가 살아 있을 때에 말하되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 그러므로 명령하여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둑질하여 가고 백성에게 말하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면 후의 속임이 전보다 더 클까 하나이다 하니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에게 경비병이 있으니 가서 힘대로 굳게 지키라 하거늘 그들이 경비병과 함께 가서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지키니라” (3) 마지막 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신빙성이 없는 이유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갔다면, 예수님의 부활이 팩트가 아니라는 것을 모두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요한을 제외하고 모두 순교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다가 순교한 것입니다. 자신이 거짓이 이라고 알고 있는 것을 위해 순교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순교한 이유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에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던 제자들이 목숨을 바쳐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2) 수의 (세마포)

요한복음을 보시면,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한 여인들이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왔는데, 무덤의 입구를 막고 있던 돌이 옮겨진 것을 보았습니다. 직감적으로 예수님의 무덤에 무슨 문제가 있음을 알고, 급히 베드로와 요한에게 달려 갔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즉시 예수님의 무덤으로 달려 갔고, 무덤 안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예수님의 수의를 본 순간, 예수님의 부활을 믿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 20:6-8, “시몬 베드로가 따라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놓여 있더라 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 여기서 말하는 세마포와 머리를 쌌던 수건은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무덤과 함께 준비했던 것입니다. 요한은 어떻게 예수님의 시체를 싼 세마포의 모양을 보고 예수님의 부활을 믿게 되었을까요?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만일 누군가가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갔다면, 시체를 감싸고 있던 세마포도 함께 가져갔을 것입니다. 왜 시체를 감싸고 있던 세마포를 다 벗기고 시체만 가져 갔겠습니까? 그리고, 만에 하나, 세마포를 벗기고 시체만 홀랑 가지고 갔다고 하더라도 세마포의 모양은 시체를 감쌌던 원래 상태와 분명히 달라져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한이 세마포를 본 순간 예수님의 부활을 믿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세마포 모양 때문입니다. 세마포는 시체를 감싼 상태 그대로 있었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만 쑥 빠져 나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존 스토트 목사님의 설명을 들어보겠습니다. (기독교의 기본 진리) “사도들이 무덤에 들어갔을 때 그들을 맞이했던 광경이 어떠했을지 어렵지 않게 상상이 된다. 돌판, 놓인 수의와 속이 빈 머리 수건 그리고 그 둘 사이의 간격! 이 수의들을 한 번만 보는 것으로도 부활의 진실성이 증명됐을 것이며, 그 성격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수의들은 인간의 손에 의해 건드려지거나 접혀지거나 어떻게 되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나방이 나와 버린 빈 번데기 껍질 같았다.” 이런 세마포를 모양을 보고,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III. 결론

말씀을 맺겠습니다.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만약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가 예수님의 무덤을 준비하고 장례를 치러드리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했고, 다른 제자들은 감히 빌라도 앞에 나설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갈릴리의 가난한 어부들이었습니다. 예루살렘 동굴 무덤에 예수님의 장례를 치를 수도 없었습니다. 만약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가 나서지 않았다면, 예수님의 시체는 힌놈의 골짜기에서 불에 태워졌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시 문화에서 십자가에 달린 죄인의 시체는 힌놈의 골짜기에서 불에 태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부활의 증거가 되는 빈 무덤과 세마포 수의는 생각도 할 수 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신의 지위를 포기하고, 자신의 재산을 사용해서 헌신한 두 인물로 인하여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증거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십자가가 없는 곳에 부활이 있을 수 없듯이 우리의 헌신이 없는 곳에 새로운 생명이 싹틀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부활을 믿읍시다. 그리고 이 복된 소식을 온 세상에 증거합시다. 주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크신 은총을 주시기를 간절히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