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설교] 시내 광야에서 만난 하나님 – 110319

창세기 강해 (1) – 시내 광야에서 만난 하나님
창 1:1~19

I. 서론

올 여름에 읽은 책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우리 목사님은 왜 설교를 못할까?” 입니다. 책 제목이 좀 특이하지요? 이 책은 David Gordon 이라는 교수님이 쓴 책입니다. 고든 교수님은 고든 콘웰 (Gordon-Conwell)신학교에서 바울 서신을 가르쳤고, 오랫동안 목회도 하신 분입니다. 이 분이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2004년 암 선고를 받은 후, 생존 확률이 25% 밖에 되지 않는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고든 교수님은 그 해를 넘길 가망이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30년간 설교를 했던 사람으로서 설교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세상을 떠난다면 무책임한 사람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후배들에게 유언과 같은 책을 쓴 것입니다. 이 책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오늘날의 설교는 수준 이하다.” 이 말을 한 다음에, 왜 오늘날의 설교가 수준 이하인지를 두 가지로 설명합니다. 첫째, 설교의 요점이 명확하지 않다. 지금까지 많은 목사님들의 설교를 들었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 요점이 명확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고든 교수님은 지난 25년간 들었던 설교 중에서 요점이 분명한 설교는 15% 밖에 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둘째, 본문에 충실한 설교가 아니다. 고든 교수님은 요점이 분명한 15퍼센트 설교 가운데서도 그 요점이 본문의 메시지와 일치하는 설교는 10% 미만이었다고 말합니다. 참으로 충격적인 말입니다. 대부분의 설교에 요점이 없고, 요점이 분명한 설교도 성경 본문의 메시지와 일치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할까요? 고든 교수님은 이것을 한 마디로 정의합니다. “설교자가 텍스트를 읽을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면, 제게 이런 질문을 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목사님, 고든 교수님의 말은 설교자에게 필요한 것이지 저희 같은 평신도에게 필요한 말씀이 아니지 않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해 드리면, 그렇지 않습니다. 고든 교수님의 말은 우리 모두가 들어야 하는 할 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인이고,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 모두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에 그 본문 말씀의 요점을 파악하고, 그 말씀을 우리 삶에 적용시킬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신앙 생활에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되는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든 교수님의 말은 우리 모두가 들어야 하는 말인 것입니다.

이제 본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인 창세기 1장의 요점은 무엇일까요? 창세기 1장이 우리에게 전해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창세기 1장은 아마도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본문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앙 생활을 조금이라도 해 보신 분이라면 새해가 되면 성경 읽기를 결심하고, 거의 대부분이 창세기 1장부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레위기, 민수기까지는 읽지 않고 중간에 포기하더라도 창세기 1장은 많이 읽게 되기 때문에 우리에게 익숙한 본문일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창세기 1장의 요점을 파악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은 많지 않습니다. 사실, 선입견을 버리고, 본문을 주의 깊게 읽어나가다 보면, 처음부터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을 만나게 됩니다. 대표적인 것, 두 가지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첫째, 2절 해석의 문제입니다.

먼저, 1~5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무 것도 없던 무에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제일 먼저 창조하신 것은 “빛”입니다. 이것은 주일학교에 가서 질문해도 맞출 수 있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 내용은 3절에서부터 나옵니다. 3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그렇다면, 2절에 나오는 “땅과 수면 (즉, 물)”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하나님의 첫 창조물인 빛이 생겨나기 전에, 땅과 물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땅과 물은 하나님의 창조물이 아닙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는 천지 창조를 두 번에 걸쳐 하셨다는 것입니까? 첫 번째 창조 시에 1절에 나오는 “땅과 수면을 포함한 천지”을 창조하셨고, 두 번째 창조부터 3절에 나오는 “빛”을 창조하신 것입니까? 어느 것이 맞는 것입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성경에서 2절을 빼버리면, 이런 복잡한 문제가 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1, 3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얼마나 깔끔합니까? 하지만, 우리 중 누가 하나님의 말씀을 더하거나 뺄 자격이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둘째, 날의 계산 문제입니다.

날, 즉 하루가 되기 위해서는 해가 있어야 합니다. 상식적으로, 해가 뜬 다음에 해가 져야 하루가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식 사고로 말씀 드리면, 해가 진 후에 해가 다시 떠야 하루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몇 째 날에 해를 창조하셨습니까? 16~19절, “하나님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을 비추게 하시며 낮과 밤을 주관하게 하시고 빛과 어둠을 나뉘게 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넷째 날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넷째 날에 비로소 낮을 주관하는 해를 만드셨고, 밤을 주관하는 달을 만드셨습니다. 그렇다면, 첫째 날부터 셋째 날까지는 어떻게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될 수 있으며, 어떻게 하루가 지났다고 말을 할 수가 있습니까?

우리가 이런 문제들에 파묻혀 있으면, 창세기가 말하고자 하는 요점을 놓치고 맙니다. 창세기는 과연 우리에게 무슨 메시지를 들려 주기 위해서 기록된 것일까요?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는 창세기를 누가 기록했으며, 창세기의 저자가 누구를 대상으로 기록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성경 해석 원리가 하나 나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분명히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성경의 원래 독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트렘퍼 롱맨 교수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와 저자 사이에 역사적, 문화적, 문학적 거리가 존재하기 때문에, 연구 없이 창세기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실제로 우리가 어떤 저작을 해석할 때 범할 수 있는 가장 큰 실수 가운데 하나는 마치 그 저작이 오늘 우리를 위해 기록된 것처럼 읽는 것이다.”

그렇다면, 창세기는 누가 기록했으며, 누구를 대상으로 기록한 책일까요? 여기에 대한 답을 하면, 창세기의 요점을 알 수 있게 됩니다. 구약과 신약 모두에서 창세기는 모세가 기록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말 4:4, “너희는 내가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내 종 모세에게 명령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 말라기 4장 4절을 보시면,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모세에게 명령한 법”이라는 문장이 나옵니다. 여기서 “법”은 히브리어로 “토라”입니다. 토라는 좁은 의미로 십계명 같은 율법을 의미하고, 넓은 의미로 모세가 쓴 율법서인 모세오경 (창, 출, 레, 민, 신)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창세기를 위시한 모세오경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 1년 동안 호렙산 부근인 시내 광야에 머물 때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말씀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토라 즉, 모세오경 전부를 시내 광야에서 기록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민수기와 신명기는 시내 광야에서 가나안 입성 전, 모압 평지까지의 여정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는 호렙산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말씀이고, 민수기, 신명기는 느보산에서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으로 보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입니다. 어째든 모세오경은 모세가 기록한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모세가 모세 오경을 기록했다고 인정을 하셨습니다. 눅 24: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누가복음 24장 44절을 보시면, “모세의 율법”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것은 단순히 십계명과 같은 율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모세가 쓴 율법서인 모세오경이라고 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선지자의 글은 선지서를 의미하고, 시편은 시가서를 의미하기 때문에 모세의 율법을 율법서 즉, 모세오경으로 이해해야 자연스럽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모세의 율법에 ~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모세의 율법을 단순히 “십계명과 같은 율법”으로 보기보다 모세가 쓴 율법서인 토라 즉, 모세오경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종합해 보면, 창세기는 모세가 기록했고, 창세기의 원래 독자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 창세기를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다.

존 세일해머 교수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John Sailhamer) “모세가 오경을 기록하여 준 백성은 그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지를 더 자세히 알 필요가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누구이며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그들을 부르신 하나님의 큰 목적이 무엇인지 알 필요가 있었다. 그러므로 모세는 이 백성을 하나님께 순종하는 한 나라로 형성하는 과정의 한 부분으로서 이스라엘 자손들의 역사를 기록한 것이다. 이 역사 속에서 모세는 그들이 누구이며 왜 이집트로 들어갔는가를 설명하였다.”

이런 이유 때문에 창세기 50장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인물이 바로 요셉입니다. 창세기는 크게 3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원시 역사 (창 1~11) / 족장 역사 (창 12~36): 아브라함, 이삭, 야곱 (24장에 걸쳐 3명 인물) / 요셉 역사 (창 37~50): 요셉 이야기 (13장에 걸쳐 1명 인물). 요셉은 성경에서 흔히 사용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 이삭의 하나님 / 야곱의 하나님”에 속하는 이스라엘의 족장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이 창세기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이유는 요셉을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 들어오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의 원래 독자들에게 그들이 어떻게 이집트에 들어오게 되었고, 어떻게 그 땅에서 종살이를 했는지를 설명해주는 것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400년 (혹은 430년)간, 이집트에서 종으로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알았던 것은 400년 전에 그들의 조상들이 섬기던 신이 있었다는 것 정도였습니다. 그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잘 알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이집트는 다신론을 믿는 나라였기 때문에 하나님을 세상의 많은 신들 중의 한 명의 신 정도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더군다나, 이집트에서 그들이 당한 부당한 대우와 학대를 생각하면, 그들의 조상들이 섬겼던 신은 강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고대 국가에서는 나라간의 전쟁이 그 나라가 섬기는 신들끼리의 전쟁으로 생각했었고, 강한 신을 섬기는 나라가 이기고 평화를 누릴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 가운데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분명히 설명해 줄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를 기록한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1장을 읽어 보면, 이방 민족들이 섬기던 고대 신들과는 다른, 하나님만이 가지시는 특징을 몇 가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오늘 이것을 간략하게 세 가지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II. 본론

첫째, 하나님은 지역 신이 아니라 우주의 신이시다.

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장 1절은 두 가지를 선언하고 있습니다. 첫째, 태초에 하나님께서 존재하셨다. 둘째, 그 하나님께서 세상의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다. 신약 성경도 이것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골 1:16~17,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그래서, 창세기 1장 1절은 기본적으로 세 가지를 부정합니다. 1) 무신론: 신은 없다. (아니다. 신은 있으며, 그분이 천지만물을 만드셨다.) 2) 유물론: 물질이 근본이다. (아니다. 물질 이전에 신이 이미 존재하셨다.) 3) 범신론: 세계가 곧 신이다. (아니다. 세계를 신이 만드셨다. 그래서 신은 세계에 속하지 않는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만이 온 세상의 유일한 신이심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이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강조하기 위해서 넷째 날에 창조된 피조물의 이름을 부르지 않습니다. 16~19절, “하나님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을 비추게 하시며 낮과 밤을 주관하게 하시고 빛과 어둠을 나뉘게 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넷째 날이니라” 여기에 보면, 낮을 주관하는 광명체를 “해”라고 말하지 않고, 그냥 “큰 광명체”라고만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밤을 주관하는 광명체를 “달”이라고 말하지 않고, 그냥 “작은 광명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일까요?

시드니 그레이다누스 교수님의 설명입니다. “창세기의 기자가 해와 달과 별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는 이유는 그 천체들에 붙여진 이름이 바로 이스라엘과 인접한 문화권에서 숭배되는 우상들의 이름들이기 때문이다. 창세기의 세계관에서 이방 세계관의 신들이라는 존재는 그저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셋째 날 식물들을 창조하신 후에서야 만들어진 것이다. 그것들은 단지 ‘광명체’일 따름이다. 이 사실을 이해하고 나면, 창세기 저자의 목표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야말로 전 우주의 운명과 이스라엘의 운명을 좌우하시는 유일한 통치자이시며 창조주이시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고자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권능의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은 보좌에 좌정하신 강력한 통치자의 이미지를 머릿속에 그렸을 것이다. 한번 내린 왕명은 그의 입에서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대로 이루어지는 강력한 군주의 이미지를 말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믿고 있습니까? 온 우주를 지으시고 다스리는 분으로 믿고 있습니까? 아니면, 많은 종교의 신들 중 한 명으로만 믿고 있습니까? 만약 우리가 기독교의 하나님이 다른 종교의 신들과 별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창세기 1장 말씀을 다시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계획을 가지고 계신 분이시다.

퀴즈를 하나 내겠습니다. 천지창조는 엿새 동안 이루어졌는데, 각 날에 창조된 것은 무엇입니까? 첫째 날: 빛 / 둘째 날: 하늘, 바다 / 셋째 날: 땅 (채소) / 넷째 날: 해, 달, 별 / 다섯째 날: 어류, 조류 / 여섯째 날: 동물, 사람. 여러분은 여기에서 특이한 점을 하나 발견하실 수 있으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첫째 날에 빛을 창조하셨고, 넷째 날에 이 빛을 사용할 해와 천체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둘째 날에 하늘과 바다를 창조하셨고, 다섯째 날에 하늘을 사용할 새와 바다를 사용할 물고기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셋째 날에 땅을 창조하셨고, 여섯째 날에 이 땅을 사용할 동물과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 것일까요? 이것은 하나님께서 온 우주 만물을 기분 내키는 대로 무작정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어떤 분명한 계획을 갖고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왜 이 메시지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들려주고 있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기에는 온통 세상이 무질서하게 보였을 것입니다. 자신들은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무려 400년 동안이나 이집트에서 억울하게 종살이를 했습니다. 출애굽 이전에는 남자 아이들이 비참하게 살해되었고, 이집트 왕으로부터 부당한 노동 착취를 당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무질서한 세상은 하나님께서 원래 만드신 세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향한 분명한 계획이 있으시다는 것을 말해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요셉을 통하여 이집트에 들어간 것이 우연이 아니듯이 이제 출애굽하여 가나안을 향하고 있는 그들의 미래도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 아래에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개인과 가정을 향해서도 분명한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여러분 개인이 이 땅에 태어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여러분 가정이 이 땅에 존재하는 것 역시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개인과 가정을 향하여 분명한 목적과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만일 우리 가운데 아직까지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을 아직 발견하지 못하신 분이 계시다면, 창세기 1장을 다시 읽으셔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로하고 축복하는 분이시다.

창조의 주인공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창조의 정점에는 인간이 있습니다. 창세기 1장을 읽어 보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특이한 점을 하나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섯 째 날, 창조 기록을 읽어 보겠습니다.

24~28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여섯째 날에는 하나님께서 땅을 사용할 동물과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동물과 사람의 창조에서 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동물은 그 종류대로 창조되었지만, 사람은 그 종류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동물이 그 종류대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강아지는 강아지로, 고양이는 고양이로, 호랑이는 호랑이로 즉, 종류대로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에게 와서는 이 말씀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인간을 인간으로 창조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인간만 유독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가 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 말을 하고 있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의 자존감을 세워주기 위해서입니다. (모세가 없는 내용을 만들어서 기록한 것은 아니지만, 역사 기록이라는 것이 어차피 저자의 선택적 기록이기 때문에 이렇게 설명 할 수 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400년 동안 이집트에서 종으로 살았습니다. 자유를 상실하고, 매일 고된 노역을 당하면서 이집트인들의 요구를 충족시켜주지 않으면, 매번 매를 맞고 살았을 것입니다. 짐승만도 못한 대우를 받고 살았습니다. 이렇게 자존감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들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본문이 일차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기록되었다는 것은 그 다음 부분을 읽어 보면, 보다 분명해 집니다. 28절을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창세기 1장 28절 말씀을 들었을 때, 그들의 반응이 어땠을까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생육, 번성, 충만”이라는 단어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1장을 보시면, 이집트 왕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학대한 원인이 나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출 1:7~11,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 애굽을 다스리더니 그가 그 백성에게 이르되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자, 우리가 그들에게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나갈까 하노라 하고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에게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 여기서 주목해야 할 단어가 있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가득하게 되었다”입니다. 이 단어는 창세기 1장 28절에 나오는 단어와 똑 같은 단어입니다. 생육, 번성, 가득 / 생육, 번성, 충만. 한글 번역에서는 가득과 충만이 다르게 번역되었지만, 히브리어 원문에서는 똑 같은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영어 성경을 봐도 똑 같은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ESV (English Standard Version) 창 1:28, And God blessed them. And God said to them, “Be fruitful and multiply and fill the earth (and subdue it, and have dominion over the fish of the sea and over the birds of the heavens and over every living thing that moves on the earth.”) 출 1:7, But the people of Israel were fruitful and increased greatly; they multiplied and grew exceedingly strong, so that the land was filled with them.

출애굽한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집트에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게 되지 않았다면, 이집트 사람들이 우리를 학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모세는 창세기를 통하여 이것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을 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여, 그렇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습니다. 여러분은 모든 피조물 가운데 가장 존귀한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후, 복을 주신 다음, 제일 먼저 명령하신 것이 바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이집트에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 고초를 당한 것은 여러분의 잘못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통하여 하고자 하는 뜻이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이 고초 때문에 여러분이 하나님께 부르짖음으로 출애굽할 수 있었고, 이제 우리는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통하여 이루실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며 나아갑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우리 가운데 이런 분이 계십니까? 여러분이 잘못한 것이 아닌데도 이상하게 일이 잘 풀리지 않고, 고초를 당하는 분이 계십니까? 지금까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살아왔는데, 계속해서 삶의 어려움 때문에 힘들어 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이런 분들은 창세기 1장을 다시 읽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향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리고, 일을 시작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반드시 여러분을 통하여 그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