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설교] 신본주의에서 인본주의로 – 112419

창세기 강해 (4) – 신본주의에서 인본주의로
창 4:1~15

I. 서론

우리가 창세기 4장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창세기 4장이 창세기 1장부터 이어지는 이야기의 연속선상에 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창세기 1장부터 창세기 3장까지 이야기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의 중심에 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십니다. 창세기 2장에서는 하나님께서 흙과 생기로 인간을 만드시고, 그들에게 직업과 결혼이라는 제도를 주신 분이십니다. 창세기 3장에서는 인간이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함으로 죄와 사망이 세상에 들어왔지만, 하나님께서 여인의 후손을 약속하셨고, 가죽옷으로 범죄한 인간의 부끄러움과 두려움을 덮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의 중심에 계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신본주의”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4장에 이 신본주의가 깨어지고 맙니다. 가인이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가인은 지금까지의 사람과 다른 독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인은 하나님께서 직접 만드시지 않고, 아담과 하와의 결혼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그가 태어난 곳은 에덴 동산이 아니라, 에덴 동산 밖이었습니다. 이것은 가인이 아담과 하와와 다르게 태어날 때부터 죄성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창세기 4장에 나타난 가인의 모습을 통해서 더 이상 신이 중심이 아니라, 인간이 중심이 되어버린 인본주의자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창세기 4장을 읽으면서, 이 질문을 계속해야 합니다. “나도 가인인가?” “나도 신본주의를 버리고 인본주의자의 삶을 살고 있지는 않는가?” 본문을 통하여 우리 자신의 신앙을 다시 점검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II. 본론

1. 첫째, 인본주의자의 예배입니다.

1~5절,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이후, 그들은 에덴 동산의 동쪽에 거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아담과 하와가 두 아들을 낳았는데, 가인과 아벨이었습니다. 가인은 농부였고, 아벨은 목동이었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가인은 농사한 땅의 소산을 가지고 제사를 드렸고, 아벨은 목축한 양의 새끼를 가지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 때는 아직 정기적인 절기가 만들어지기 전이었지만, 농사와 목축의 추수물을 가지고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이들이 드린 제사는 “추수감사예배”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물은 받으셨지만,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셨을까요?

1) 첫째, 정성이 담긴 제물로 제사를 드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3~5절,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가인은 땅의 소산을 드렸고, 아벨은 양의 새끼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구약성경에 곡물제사와 동물제사 모두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형용사에 있습니다. 가인은 땅의 “그냥” 소산이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입니다. 가인은 제사를 드릴 때, 귀한 것을 드린 것이 아니라 곡식물 중 일부를 드린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일부도 가치가 없는 것을 드린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타인에게 선을 행하지 않았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일 3장에서는 가인이 악을 행했고, 아벨은 선을 행했다고 비교하고 있습니다. 가인이 얼마나 좋지 않은 수확물을 하나님께 드렸는지는 몰라도 최소한 아벨처럼 귀한 것을 드리지 않은 것은 분명합니다. 반면,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을 제사를 드렸습니다. 가장 귀한 것을 드린 것입니다.

2) 둘째, 자신을 드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4~5절,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하나님께서 받으신 것은 단순히 아벨의 제물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을 받으셨다” 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제물을 받으실 때, 그 제물을 드린 사람을 보고, 그 사람과 제물을 함께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제물이라고 하더라도 드리는 사람이 자신을 드리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그 제물을 받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배의 핵심입니다. 그렇다면, 왜 가인은 자신을 드리는 예배를 드리지 못했을까요? 가인 마음에 감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가인은 에덴 동산 동편에서 농사를 하면서 고생을 많이 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인하여 땅은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는 땅으로 변해버렸고, 얼굴에 땀을 흘려야 비로소 제대로 된 수확을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인은 내 힘으로, 내 노력으로 땅의 소산을 얻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지만, 진정한 감사의 제사가 아니라, 형식적인 제사 밖에 드리지 못한 것입니다. 이것은 11~12절을 읽어 보면, 더 명확해 집니다. 11~12절,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이 구절은 가인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이었습니다. 12절,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다.” 땅이 갑자기 그 효력을 주지 않는 것은 갑자기 어떤 화학 공장에서 유해한 물질을 대량 살포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뒤집어서 생각하면, 이런 것입니다. 가인이 땅에서 농사를 지어서 땅의 소산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햇볕을 주시고, 물을 주시고, 기름진 땅을 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은혜가 없었다면, 가인은 아무리 농사를 지어도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혹시 우리 중에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내가 이만큼 건강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무리하지 않고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자기 관리를 하기 때문이야. 내가 이만큼 먹고 살 수 있는 이유는 남이 놀 때 남처럼 놀지 않고 밤새도록 공부하고 일했기 때문이야.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내가 인본주의자다”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가인처럼 말입니다. 반면, 신본주의자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이만큼 건강하고, 이만큼 먹고 살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내 생명과 건강을 지켜 주시기 때문이고, 하나님께서 내게 지혜와 지식과 환경을 허락해 주시고,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주셨기 때문이야.

지난 주에 “신학교 동문 카톡”에 이런 글에 올라왔습니다. David Lamb이라는 구약학 교수님이 계십니다. 제 신학교 은사이기도 한 분입니다. 이 분이 강의를 하시기 위해서 한국에 가셨는데, 서울 사랑의교회에서 토요 새벽기도회를 인도하시게 되었습니다. 이 기도회 때, Lamb 교수님이 이런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하늘의 위로와 은혜와 능력과 평안을 저희 자녀들에게도 내려 주시옵소서” 한국 시각으로 새벽이었기 때문에 미국 시각으로는 저녁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Lamb 교수님이 이런 기도를 드리는 시각에 24세인 교수님의 아들이 대학원 주차장에서 차를 타고 집으로 가려고 하는 순간, 갑자기 강도가 권총을 가지고 차에 타서 돈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지갑을 열어서 돈을 주려고 했지만, 가진 돈은 하나도 없었고, 샌드위치 가게의 쿠폰만 몇 개 있었다고 합니다. 아들은 돈은 없으니 이거라도 가지려면 가지고 가라고 말을 했지만, 강도는 막무가내로 위협하며 돈을 계속 요구했다고 합니다. 목숨을 잃을지도 모를 절체절명의 순간이었습니다. 그러자, 교수님 아들이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합니다. “당신에게 드릴 돈은 없지만, 당신을 위해 기도해 드리고 싶습니다.” 그러자, 어이가 없었던 강도는 “에이” 하면서 차에서 내려서 가버렸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그래, 그것은 확실히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신 거야. 하나님의 은혜야.”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지난 한 주 동안, 몇 번이나 차를 타고 내리셨습니까? 그 때, 여러분의 차 안에서 총을 든 강도를 만난 적이 있으십니까? 그것이 우연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강도를 만나지 않는 것, 그것이 더 큰 은혜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보호해 주신 것입니다. 한 가지 예를 더 드리겠습니다. 비행기로 종종 여행을 하실 겁니다. 비행기를 탔는데, 비행기의 날개가 파손되어 갑자기 추락하고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이런 상황 가운데서 여러분이 조금도 안 다치고 안전하게 구조되면, 여러분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주셨다고 고백할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분은 감사헌금을 하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닙니다. 지금까지 수없이 비행기를 탔지만, 한 번도 추락하는 비행기를 타지 않는 것이 더 큰 은혜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하나님의 은혜에 올라 타시겠습니까? 추락하는 비행기입니까 아니면 순항하는 비행기입니까? 강도 만난 차입니까 아니면 오늘도 무사한 차입니까?

본문으로 다시 돌아가 보겠습니다. 가인에게는 그런 신앙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필요한 건강과 환경을 주셨기 때문에 그가 농사를 할 때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는 믿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추수감사예배를 어떻게 드리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지난 일년 동안, 우리의 건강과 가정과 나라를 지켜주셨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이 모든 것은 내가 열심히 살아서 된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여기에서 신본주의자와 인본주의자가 갈라지는 것입니다.

2. 둘째, 인본주의자의 반항입니다.

5~8절,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가인은 제사를 드린 후 실패하자, 4가지 모습으로 하나님께 반항합니다.

1) 하나님께 몹시 화를 냅니다.

5절,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참 이상한 장면이 나옵니다. 가인은 자신의 제사가 하나님께 받아들여지지 않자, 몹시 화를 내었고, 안색까지 변하게 되었습니다. 상식적으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제사를 받지 않으시면, 왜 받지 않으셨는지를 점검해서 다음 번에 올바로 제사를 드리면 됩니다. 그런데, 가인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왜 아벨의 제물은 받으시고, 자신의 제물은 받지 않느냐고 몹시 화가 난 것입니다. 예배의 성공 기준, 수납 여부가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이 된 것입니다.

2)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합니다.

6~7절,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하나님께서 가인의 모습을 보니까, 분명히 아벨에게 나쁜 짓을 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가인에게 죄를 짓지 말고, 죄를 다스리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런데, 가인은 이러한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동생 아벨을 죽이고 맙니다. 8절,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이것은 우발적인 범행이 아니었습니다. 계획적인 범행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가인이 아벨을 들로 끌어내어서 살해를 했기 때문입니다. 한글 성경에는 생략되어 있지만, 영어 성경에서 가인이 아벨에게 무엇을 말했는지가 명확하게 나와 있습니다. 8절, “Now Cain said to his brother Abel, "Let's go out to the field." And while they were in the field, Cain attacked his brother Abel and killed him.” 가인은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동생 아벨을 쳐죽였습니다.

신학자들은 가인이 자신의 제사를 받지 않으신 하나님께만 화가 난 것이 아니라, 제물이 열납된 동생에게 시기 질투를 가졌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 시기 질투는 성경에서 자주 등장하는 주제입니다. 우리가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는 이 부분을 잘 다루어야 합니다.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죽이려고 했던 이유가 시기 질투 때문이었고,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이유도 시기 질투 때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우리 중에 시기 질투하는 분이 계십니까? 만약 있으시다면, 우리가 이 문제로 죄를 짓지 않도록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영국 런던에 프레드릭 마이어 (Frederick B. Meyer)라는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당시에 마이어 목사님은 강해 설교자로 유명한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런던에 한 설교가가 혜성처럼 등장했습니다. 바로 챨스 스펄전 (Charles Spurgeon)목사님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이 런던에 등장했는데, 캠벨 몰간 (Campbell Morgan)목사님이었습니다. 가끔씩 사람들이 마이어 목사님에게 와서 “스펄전 목사님의 설교가 너무너무 좋아요. 몰간 목사님의 설교가 좋아요.”고 칭찬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이어 목사님도 인간인지라 마음에 부담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이 런던에 두 명의 새로운 설교자, 스펄전과 몰간을 주셨습니다. 이런 위대한 설교자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스펄전 목사님을 축복해 주시고, 몰간 목사님을 축복해 주십시오. 이 교회들이 계속 부흥되게 도와 주십시오. 그래서 사람들이 앉을 자리가 없도록 가득가득 차서 남은 사람들은 저희 교회로 돌려주십시오.”

3) 하나님께서 주신 회개의 기회를 날립니다.

9절,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아벨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질문하셨으까요? 가인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마치, 아담과 하와에게 그 기회를 주신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가인의 대답은 무엇이었습니까? 9절,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거짓말과 빈정거림입니다.

4) 하나님께서 내리신 죄벌에 대해 불복합니다.

12~13절,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내리신 형벌은 땅이 그 효력을 더 이상 주지 않는 것과 땅에서 유리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인이 이런 하나님의 죄벌에 대해서 항소합니다. 불복합니다. 제가 만일 목사가 아니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면, 저는 가인을 인본주의자의 영웅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철저하고도 용감하게 하나님께 대항한 인물은 찾기 어렵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의 죄에 대해서 형벌을 내리시자, 가인은 하나님과 맞짱을 뜹니다. 어떻게 창조주가 내리는 죄벌에 대해서 그 죄벌이 무거우니 그 형량을 감해달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아담과 하와에게서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장면입니다. 가인이 계속해서 말합니다. 14절,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부분을 성경의 난제라고 말하곤 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보시면, 아담이 930년을 살면서, 많은 자녀들을 낳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창 5:3) 아우를 죽인 가인을 다른 형제들이 죽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네 가지 모습으로 반항하는 가인에게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가인을 대하셨습니까? 은총을 베푸셨습니다. 마치, 죄를 지은 아담과 하와에게 은총을 베푸신 것과 같이 말입니다.

3. 마지막, 인본주의자를 위한 은총입니다.

두 가지 은총이 내려집니다.

1) 첫째, 가인의 표입니다.

15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가인의 표가 무엇인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것은 형벌의 표가 아니라 가인을 죽음으로부터 보호하는 표였다는 것입니다. 이 내용은 창세기의 첫 독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충격적인 이야기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동해복수법 (동해보복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레 24:17~20, “사람을 쳐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요 짐승을 쳐죽인 자는 짐승으로 짐승을 갚을 것이며 사람이 만일 그의 이웃에게 상해를 입혔으면 그가 행한 대로 그에게 행할 것이니 상처에는 상처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갚을지라 (남에게 상해를 입힌 그대로 그에게 그렇게 할 것이며)” 그러니까, 가인은 아벨을 죽였기 때문에 자신도 반드시 죽임을 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가인의 목숨을 바로 가져가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그를 죽이려는 자에게는 더 큰 벌을 내리겠다고 말씀하시면서 그를 보호하십니다. 이것은 아담과 하와에게 내리신 은총보다 더 큰 은총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비는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2) 둘째, 가인의 문명입니다.

16~22절,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더니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니라 에녹이 이랏을 낳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고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고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 라멕이 두 아내를 맞이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였더라 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였더라”

가인의 후손을 통하여 인류 최초의 문명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가인은 도시 문명을 만들었고, (17) 야발은 축산 문명을 만들었으며, (20) 유발은 음악 문명을 만들었고, (21) 두발가인은 산업 문명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22, 요즘으로 말하면, IT 첨단 문화)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인류 최초의 문명을 이룩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을 살려두시고, 그에게 다시 에덴의 동쪽의 동쪽에 가서 살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없었다면, 가인의 후손은 처음부터 이러한 문화와 문명을 만들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일반은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지금까지 구원자 하나님을 많이 강조해 왔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전혀 은총을 베풀지 않는 분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성경적인 세계관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구원자이실 뿐만 아니라, 창조주도 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창조하신 창조 세계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비록 이들이 구원에서는 멀어졌지만, 이 땅에 살 동안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일반은총에서는 제외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부분을 명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마 5:44~45,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그러니까, 하나님과 상관없는 문화와 문명을 이룩하는 사람들도 결국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나 지금이나 동일합니다.

III. 결론

말씀을 맺겠습니다. 창세기 4장을 마치면서, “나도 가인이 아닌가? 나도 인본주의자가 아닌가?”라는 질문을 해야 합니다. 가인의 특징을 간단히 말씀 드리겠습니다. 내가 혹시 여기에 해당되는 것은 아닌지 마지막으로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1) 가인은 에덴 동산 밖에서 인간에 의해서 태어난 인물로서, 죄성을 가지고 태어났다. 나도 내 안에 있는 죄성으로 절망하고 있지는 않은가? 2) 가인은 하나님께 받으실 수 없는 형식적인 제사를 드린 인물이다. 나도 내 자신을 드리는 참된 예배가 아니라, 형식적인 예배만 드리고 있지는 않은가? 3) 가인은 하나님께만 화를 낸 것이 아니라, 동생에 대해서 시기와 질투가 있었다. 나도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지 않은가? 4) 가인은 죄를 다스리지 못하고, 화를 동생 아벨에게 풀었다. 나도 내 성질을 내 남편이나 아내에게 혹은 가족이나 이웃에게 그대로 풀고 있지는 않은가? 5) 가인은 하나님을 떠나 자신만의 성을 쌓았다. 나도 나의 성을 쌓으면, 하나님의 보호가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살고 있지는 않은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여러분도 가인이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