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설교]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 111719

창세기 강해 (3) –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창 3:1~15

I. 서론

창세기 3장에는 최초에 관한 기록이 많이 나옵니다. 물론, 최초에 관한 기록은 창1부터 나옵니다. 하지만, 창세기 3장에 나오는 최초에 대한 기록은 창세기 1장과 2장에 나오는 최초에 대한 기록과는 다른 것입니다. 왜냐하면, 창1에서 모든 것을 선하게 만드셨고, 창세기 2장에서 하나님께서 아담의 짝인 하와를 만듦으로써 유일하게 좋지 않았던 부분까지 에덴동산을 완벽한 곳으로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3장에 나오는 최초에 대한 기록은 처음부터 우리를 불안하게 만듭니다. 이미 완벽한 세상에 새로운 것이 더 들어오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창세기 3장에 나오는 최초의 기록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II. 본론

1. 첫째, 뱀이 나옵니다.

1절,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뱀은 하나님께서 여섯째 날 만드신 동물입니다. 그러므로 뱀의 등장은 최초로 대한 기록이 아닙니다. 그런데, 창세기 3장에 나오는 뱀은 보통 뱀이 아닙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그렇습니다. 말을 합니다.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그리고, 하와를 유혹합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 먹지 말라 하시더냐” 성경은 창세기 3장에 나오는 뱀을 “사탄”이라고 설명합니다. 계 12:9,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그러니까, 창세기 3장에 사탄이 최초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 이전에는 사탄이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갑자기 등장한 사탄에 대해서 궁금한 점이 많을 수 밖에 없습니다. 도대체 사탄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요? 사탄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존재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처럼 스스로 존재하는 것입니까? 만약, 하나님께서 만드신 존재라면, 하나님을 선한 분으로 인정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악한 존재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만약 하나님처럼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라면, 사탄은 피조물이 아님으로 하나님과 동등한 존재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문제는 성경 어디에도 사탄의 기원에 대해서 명확하게 설명해 주는 부분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건전한 신학자의 설명에 귀를 기울여 보면, 조금의 힌트를 얻을 수는 있습니다. 제임스 몽고메리 보이스 목사님의 설명을 인용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요한계시록 12장 9절에 근거해서 창세기 3장의 뱀은 하나님의 옛 대적자 사탄이라는 것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사탄이 먼저 타락하고, 그 다음 아담과 하와가 타락했다. 에스겔 28장과 이사야 14장이 반드시 사탄과 연관되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탄과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사탄에 대해 알고 있거나 추측할 수 있는 것과 일관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략) 이 구절들이 창조의 최초 상태와 그 후에 일어난 사탄의 세력을 묘사하는 것이라면, 이 구절들은 사탄에 관해 어떤 중요한 것을 말해주고 있다.

본문을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겔 28:12~15, “인자야 두로 왕을 위하여 슬픈 노래를 지어 그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는 완전한 도장이었고 지혜가 충족하며 온전히 아름다웠도다 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 곧 홍보석과 황보석과 금강석과 황옥과 홍마노와 창옥과 청보석과 남보석과 홍옥과 황금으로 단장하였음이여 네가 지음을 받던 날에 너를 위하여 소고와 비파가 준비되었도다 너는 기름 부음을 받고 지키는 그룹임이여 내가 너를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성산에 있어서 불타는 돌들 사이에 왕래하였도다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네게서 불의가 드러났도다” 에스겔 28장이 사탄의 기원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면, 사탄을 원래 천사였고, 하나님의 피조물 중에서 “지혜와 미가 완전한 피조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14절의 “그룹”은 천사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12절에 그 천사는 “완전한 도장, 지혜가 충족, 온전히 아름다웠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을 영어 성경으로 보면, 뜻이 더욱 명확해 집니다. 'the model of perfection, full of wisdom and perfect in beauty. 그런데, 이런 완전한 존재로 지음 받은 천사가 15절에 가서 보면, “마침내 불의가 드러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불의는 무엇일까요? 이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사야 14장을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사 14:12~15,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그러나 이제 네가 스올 곧 구덩이 맨 밑에 떨어짐을 당하리로다” 타락한 천사의 죄는 14절에 명확하게 나옵니다. “내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피조물 중에서 가장 지혜롭고 아름다운 존재로 창조된 천사는 자신의 지위에 만족하지 못하고, “지극히 높은 이” 즉,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타락한 천사가 천상에서 쫓겨난 이유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이유도 이와 똑같습니다. 자신의 지위에 만족하지 못하고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한 것입니다.

2. 둘째, 유혹이 나옵니다.

1절,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창세기 3장 이전에는 유혹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최초의 유혹이 나오는 창세기 3장을 통하여 우리는 사탄이 어떻게 하와를 유혹했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도록 해서 결국 하나님의 말씀에 (명령에) 불순종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1절에 보시면, 사탄은 이런 질문으로 하와를 유혹합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이 질문의 무엇이 잘못되었습니까? 무엇이 참된 하나님의 말씀과 다릅니까? 창 2:16~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와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free) 먹어라 단,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하나님의 말씀을 변경시켜서 하나님의 인자한 성품에 대해서 의심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럼, 사탄의 두 번째 말은 무엇입니까? 4~5절,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첫 번째 말은 하나님의 성품을 의심하게 만들었고, 두 번째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부정했습니다.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두 번째 말에서 사탄은 바로 치고 들어온 것입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요? 하와가 틈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사탄의 첫 번째 질문에 하와가 무엇이라고 대답했습니까? 2~3절,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하와는 세 가지 면에서 틈을 보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뺏습니다.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를 “동산 나무의 열매”로. 하나님의 말씀에 더했습니다. “먹지 말라”를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바꾸었습니다. “반드시 죽으리라”를 “죽을까 하노라”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탄의 유혹에 빠지지 않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더하거나 빼거나 바꾸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3. 셋째, 두려움이 나옵니다.

8~10절,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기 전에는 두려움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범죄한 후에 최초로 느끼는 감정은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두려워한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낮을 피해서 숨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발견할 수 있는 진리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때,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 41: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하나님께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후, 약속하신 것은 “너와 함께 하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여러분 가운데 두려워하는 분이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신다는 약속의 말씀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온 세상 보다 더 크신 분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4. 넷째, 책임전가가 나옵니다.

11~13절, “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책임전가가 최초로 등장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먼저 질문하셨습니다. “네가 그 나무 열매를 먹었느냐?” 그러자, 아담이 책임전가를 합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나무의 열매를 준 하와뿐만 아니라, 하와를 만드신 하나님까지 비난하고 책임을 전가한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의 대표적인 모습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보시면, 뱀이 하와를 유혹할 때, 아담이 그 자리에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6절,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아담은 하와와 뱀의 대화를 모두 듣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자신의 아내 하와를 지키기 위해서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아담도 뱀의 유혹에 넘어갔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아내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하와에게 질문하십니다.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그러자, 하와가 뱀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뱀을 비난했습니다. 자신의 욕심으로 선악과 열매를 먹었다고 말하지 않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우리도 지금 우리가 처한 환경을 두고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나도 아담과 하와의 후솜이구나 생각하시면 됩니다. 나도 타락한 죄인이구나 하고 생각하시면, 정답입니다.

5. 다섯째, 여자의 후손이 나옵니다.

14~15절,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여자의 후손에 대한 이야기가 최초로 등장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여자의 후손”에서 “후손”이 히브리어 원어에서 “남성 단수”형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여자의 후손은 하와가 앞으로 낳을 수많은 후손들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자가 낳을 “한 남자”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자의 후손”은 누구를 말할까요?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갈 4:4~5,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이 2,000년 전,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실행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해서입니다. 요일 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그렇다면, 마귀의 일은 무엇입니까? 마귀는 자신이 마지막 심판에서 영원한 불 심판을 받을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만 죽지 않고, 사람들을 유혹해서 같이 죽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마귀의 일입니다. 마 25: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지옥 불은 원래 사람을 심판하기 위해 예비된 것이 아니라 마귀와 그의 사자들을 심판하기 위해서 예비된 것입니다. 마귀가 하는 일은 물귀신 작전이 아니라 불귀신 작전입니다. 같이 영원한 불에 들어갈 자를 유혹하는 것입니다.

6. 여섯째, 가죽옷이 나옵니다.

21절,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주보의 지면 상, 싣지는 못했지만, 창세기 3장과 같은 본문에 있는 말씀입니다. 성경 최초로 가죽옷이 등장합니다. 창세기 3장을 보면, 참 이상한 부분을 발견하게 됩니다. 에덴동산에서 누가 최초로 죽었는지 아십니까? 범죄한 아담이나 하와가 최초로 죽은 것도 아니고,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도록 유혹한 뱀이 죽은 것도 아닙니다. 죄 없는 한 동물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 죄 없는 동물은 누가 죽였는지 아십니까? 바로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럼, 하나님께서는 왜 죄 없는 동물을 죽이셔서 가죽옷을 지으셨습니까? 죄를 지은 아담과 하와를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가죽옷은 무엇을 상징할까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으심에도 죽임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죽도록 이 땅 가운데 보낸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이유는 죄를 지은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이보다 더 완벽한 복음은 없습니다.

7. 마지막 일곱째, 은혜가 나옵니다.

창세기 3장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뱀의 유혹으로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고, 함께 있던 아담에게 주어 그도 먹었습니다. 그들이 선악과를 따 먹은 이유는 사탄의 범죄와 그 성격이 같습니다. 자신의 지위에 감사하지 못하고,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한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피해 다녔고,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면서 서로를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완벽했던 에덴 동산이 순식간에 지옥이 되어 버리고만 것입니다. 이런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약속해 주셨습니다. 여인의 후손을 보낼 것이며, 그 후손을 통하여 사탄의 대가리가 깨어질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행동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친히 동물을 잡으셔서 가죽옷을 지어, 두려워 떨고 있는 아담과 하와에게 입혀 주셨습니다.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호의. 이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죄가 더한 곳인 에덴 동산에 은혜가 더욱 넘친 것입니다.

III. 결론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지금의 지위에 (환경에) 감사하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고, 그 말씀을 더하거나 빼거나 변경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가족이나 이웃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그들을 비난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사탄의 권세를 멸하시고, 죄와 사망을 정복하시고 부활하신 것을 믿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비록 우리가 죄를 지어 두려움에 떨고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친히 가죽옷을 지어 우리에게 입히시는 은혜로우신 분이심을 믿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번 한 주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묵상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위 이웃에게 이 복된 소식을 전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