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설교] 하나님과 동행하는 에녹의 믿음 – 120119

창세기 강해 (5) –하나님과 동행하는 에녹의 믿음
창 5:4~27

I. 서론

창세기 5장은 주일학교 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장입니다. 왜냐하면, 주일학교에서 성경고사나 성경퀴즈를 하면, 창세기 5장에서 꼭 한두 문제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죽지 않고 하늘로 올라간 사람은 누구인가요? 이 세상에서 가장 오랫동안 산 사람의 이름과 나이는 무엇인가요? 답은 에녹이고, 므두셀라 (& 969세)입니다. 아쉬운 것은 주일학교에서 이런 단답형 문제는 출제하는데, 왜 에녹이 죽지 않고 하늘로 올라갔으며, 왜 므두셀라가 가장 오랫동안 살았는지에 대한 설명은 해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알고 계십니까? 에녹이 죽지 않고 하늘나라로 올라간 것과 므두셀라가 성경에서 가장 오랫동안 산 것은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기 위해서 일까요? 우리가 이런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창세기 5장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5장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창세기 4장과 창세기 5장을 서로 비교하면서 읽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창세기 4장과 5장은 서로 정반대의 내용이 서로 대조되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4장에는 가인과 그의 후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창세기 5장에는 셋과 그의 후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이러한 족보상의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창세기 4장과 5장을 자세히 읽어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아담으로부터 시작하는 가인과 셋의 각 족보에서 7대손에 해당되는 인물이 강조되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창세기에서 7이라는 숫자는 굉장히 의미 있는 숫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육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신 후, 일곱째 날에 안식하심으로, 7은 완성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아담으로부터 시작하는 가인과 셋의 각 7대손은 각 가계의 특징을 완전히 드러내 주는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배경을 염두에 두고, 창세기 4장과 5장을 읽을 때, 비로소 본문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본문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아담으로부터 시작하는 가인의 7대손은 “라멕”이고, 아담으로부터 시작하는 셋의 7대손은 “에녹”입니다. 간단하게 “라멕”의 특징에 대해서 살펴본 후, 오늘 본문인 “에녹”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II. 본론

1. 첫째, 라멕입니다.

창 4:19~24, “라멕이 두 아내를 맞이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였더라 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였더라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

라멕은 한 마디로,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깨뜨리고, 자기 정욕대로 산 사람입니다. 세 가지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먼저, 라멕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결혼의 질서를 깨뜨리고, 아내를 두 명을 두었습니다. 19절, “라멕이 두 아내를 맞이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였더라” 라멕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일부일처제를 깨뜨리고, 두 명의 아내와 결혼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라멕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정의의 질서를 깨뜨리고, 사람을 함부로 죽였습니다. 23~24절,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질서는 동해복수법입니다. “생명에는 생명 / 이에는 이 / 눈에는 눈”입니다. 간혹 어떤 분들은 이것이 잔인하다고 생각하시데, 우리는 여기에 나타난 법 정신을 읽어야 합니다. “네가 그런 해를 받지 않으려면, 너도 남을 해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시면, 라멕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정의의 질서를 파괴했습니다. 라멕은 자신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이유로 사람을 살해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라멕은 하나님과 인간의 질서를 깨뜨리고, 하나님을 조롱하기까지 했습니다. 24절,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베푸신 은혜를 상징합니다. 하지만, 라멕은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조롱하고, 자신을 죽이는 자에게는 벌을 칠십칠 배를 받을 것이라고 거드름을 피운 것입니다. 한 마디로, 라멕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창조의 질서를 깨뜨리고, 자신의 정욕대로 산 사람이었습니다. 이에 반하여 에녹은 라멕과 정반대로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았습니다.

2. 둘째, 에녹입니다.

본문을 자세히 읽어 보면, 에녹 역시 세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에녹이 죽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을 잘 보시면, 아담부터 므두셀라까지 모두 “살고 죽었더라”라고 끝을 맺고 있습니다. (5절, 11절, 14절, 등) 하지만, 에녹만 “살았더라”로 끝을 맺습니다. (23절) 이것을 히브리서에서 명확하게 말해 줍니다. 히 11:5,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에녹은 죽지 않고, 하늘로 올라간 것입니다. 그리고,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것이 두 번이나 강조되었습니다. 22~24절,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오늘 본문을 자세히 보시면, 아담부터 므두셀라까지 모두 “낳은 후 몇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라고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4절, 7절, 13절, 등) 하지만, 에녹에 대한 부분에서만 다르게 기록되었습니다. “낳은 후” 와 “자녀를 낳았으며” 사이에 “하나님과 동행하며”가 첨가되어 있습니다. (22절) 알리스터 맥그래스 교수님이 이것을 두고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단순히 ‘살다가 죽었다’는 사실만 기록된 사람들도 있는가 하면,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기록된 사람도 있다. 5장은 단순히 생물학적 차원에서 사는 것과 하나님을 위하여 사는 것을 분명하게 구별한다.” 마지막으로,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게 된 시기는 (혹은 계기는) “므두셀라를 낳은 후”이라는 것입니다. 21~22절,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이 부분이 중요합니다. 므두셀라를 낳기 전에는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므두셀라를 낳은 것이 계기가 되어 하나님과 동행했고,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자, 하나님께서 그를 데리고 가심으로 에녹이 죽음을 맛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녹을 이해하는 열쇠는 “므두셀라”입니다.

여러분은 므두셀라라는 이름을 들을 때, 어떤 생각이 제일 먼저 드십니까? 성경에서 가장 오랫동안 산 인물. 맞습니다. 그렇다면, 므두셀라는 왜 성경에서 가장 오랫동안 살았을까요? 여기에 아무런 이유가 없을까요? 아니면, 여기에 어떤 메시지가 있을까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므두셀라의 이름의 뜻과 그의 나이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 먼저, 므두셀라의 이름의 뜻입니다. 신학자들은 므두셀라라는 이름이 두 단어의 합성어라고 생각합니다. 무트 (muth) + 살라흐 (shalach) 입니다. 무트는 “죽다”, 살라흐는 “보내다”라는 뜻입니다. 이것을 전후 문맥에 맞도록 해석하면, 이런 것입니다. “그가 죽을 때, (무엇을) 보낼 것이다.” 무슨 말입니까? 에녹이 므두셀라를 낳을 때, 하나님께서 에녹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므두셀라가 죽을 때, 홍수를 보내어 세상을 심판할 것이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심판은 우리가 잘 알듯이 “노아의 홍수”라는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이것을 꺼꾸로 생각하면, 이런 것입니다. 므두셀라가 죽기 전까지는 하나님의 심판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무슨 말입니까? 세상에 죄악이 가득하여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시기로 에녹 시대부터 작정하셨습니다. 하지만, 므두셀라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살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만큼 오랫동안 참으셨고, 사람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므두셀라의 나이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죄인을 향한 은혜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말 맞는 말인지는 므두셀라가 죽은 나이와 홍수가 일어난 연도를 계산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2) 둘째, 므두셀라의 나이입니다. 므두셀라는 몇 살에 죽었습니까? 969세. 감이 잘 안 오시지요? 만일, 므두셀라가 올 해 2019년에 죽었다면, 므두셀라는 몇 년도에 태어난 것입니까? 므두셀라는 1,050년에 태어난 것입니다. 정말 긴 기간입니다. 이제 므두셀라의 나이와 노아 홍수 연도를 계산해 보겠습니다. 21~29절,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므두셀라는 백팔십칠 세에 라멕을 낳았고 라멕을 낳은 후 칠백팔십이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는 구백육십구 세를 살고 죽었더라 라멕은 백팔십이 세에 아들을 낳고 이름을 노아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에녹은 65세에 므두셀라를 낳았습니다. 에녹은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므두셀라를 낳은 후). 에녹은 365세를 살았습니다 (총 생존 연도). 므두셀라는 187세에 라멕을 낳았습니다. 므두셀라는 782년을 살고 죽었습니다 (라멕을 낳은 후). 므두셀라는 969세를 살았습니다 (총 생존 연도). 라멕은 182세에 노아를 낳았습니다. 노아 출생 당시, 므두셀라의 나이는 369세였습니다. (187 + 182 = 369) 노아 출생 후, 므두셀라 생존 기간은 600년이었습니다. (969 – 369 = 600) 그러므로, 이제 노아의 홍수가 노아의 나이 600년에 일어났는가를 살펴보면, 됩니다. 창 7:11~12, “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 둘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노아의 홍수는 노아 나이 600년에 일어났습니다. 즉, 므두셀라가 죽은 해에 하나님의 심판이 일어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므두셀라가 오래 산 이유는 우연히 그냥 오래 산 것이 아닙니다. 므두셀라가 오래 산 만큼, 하나님께서 인내하셨고, 심판을 유보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에녹의 삶은 하나님의 은혜와 밀접한 연관을 가집니다.

3. 셋째, 에녹의 삶입니다.

22~24절,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에녹은 므두셀라가 태어날 때, 세상의 종말이 올 것이라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들었습니다. 므두셀라는 이 메시지를 들은 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산 것입니다. 이것을 본문에서는 두 번이나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해야 합니다. 과연,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오늘 본문에서는 그 의미를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에녹의 삶에서 대해서 설명하는 성경의 다른 본문들을 참고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성경의 족보 상에서 에녹이라는 이름이 등장하는 곳은 몇 군데 더 있지만, 에녹의 삶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부분은 딱 두 군데가 있습니다. 유다서와 히브리서입니다.

1) 유다서에 나타난 에녹의 삶

유 14~15, “아담의 칠대 손 에녹이 이 사람들에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하지 않은 자가 경건하지 않게 행한 모든 경건하지 않은 일과 또 경건하지 않은 죄인들이 주를 거슬러 한 모든 완악한 말로 말미암아 그들을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유다서 본문을 보시면, 아담의 칠대 손 에녹이 예언한 내용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에녹은 당시 예언자였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예언자라는 말은 선지자라는 말과 같은 의미입니다. 창세기에는 에녹이 예언한 내용이 나타나 있지 않지만, 유다서에는 그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유다서 본문을 주의해서 보시면, 에녹이 예언한 내용은 유다가 살던 시대의 사람들에 대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대 사람들의 특징은 15절에 잘 나와 있습니다. 15절,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하지 않은 자가 경건하지 않게 행한 모든 경건하지 않은 일과 또 경건하지 않은 죄인들이 주를 거슬러 한 모든 완악한 말로 말미암아 그들을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경건하지 않은 일을 행하고, 주님을 거슬러 완악한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에녹은 유다가 유다서를 기록할 당시의 사람들에게만 예언을 한 것이 아니라, 에녹 자신이 살던 시대 사람들에 대해서도 예언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14절에 “에녹이 이 사람들에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라고 기록한 것입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에녹이 예언한 사람들의 특징은 유다가 유다서를 기록할 당시의 사람들의 특징과 에녹이 자신의 시대에 예언한 사람들의 특징과 똑같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조금 전, 가인의 후손, 라멕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라멕의 특징이 무엇이었습니까? 라멕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창조의 질서를 깨뜨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일부일처제를 깨뜨리고, 하나님께서 만드신 동해복수법을 깨뜨렸습니다. 이것을 한 마디로, 경건하지 않은 일을 행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15절, 상) 그리고,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베푸신 은혜를 비꼬는 조롱하는 말까지 했습니다. ‘벌이 칠십 칠배이리로다’ 이 말은 주님의 은혜를 거스르는 완악한 말을 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15절, 하) 중요한 것은 에녹이 자신의 시대에 살았던 라멕과 같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전하는 예언자로서의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임스 몽고메리 보이스 목사님은 에녹을 “전도자였다”고 한 마디로 정의했습니다. 또한 지구촌교회 이동원목사님도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에녹은 하나님의 심판을 믿었고, 그 시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메시지를 증거했다.” 한 마디로, 에녹은 하나님의 심판을 전하는 전도자의 삶을 산 것입니다.

여기서 저는 한 가지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에녹이 300년 동안이나 행한 예언 사역, 전도 사역은 얼마나 성과가 있었을까요? 한 다디로, 전혀 성과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에녹의 증손자 노아 때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창 6:12~13,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가인의 후손들은 에녹이 전한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듣고도 계속해서 부패하고 포악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가인의 후손들 뿐만 아니라 셋의 후손들까지도 이러한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아의 가족 8명 외에는 모두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에녹이 하나님의 심판을 300년 동안이나 전했지만, 아무런 열매도 거두지 못한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에녹은 완전히 실패한 사역자였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개척 교회 목사이거나 열매가 없는 선교사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는데, 열매는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에녹의 사역을 두고 말이 많았겠습니까? 지난 시간에 살펴본 대로, 가인과 그의 후손들은 찬란한 문명을 꽃피워 가고 있었고, 당시만 해도 사람의 수명이 평균 900세가 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심판으로 지구의 종말이 온다고 예언을 했으니, 한 마디로, 에녹은 “왕따”를 당했을 것입니다. 이런 가운데,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계속 선포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겠습니까? 만일 여러분이 에녹이었다면, 300년 동안이나 열매 없는 사역을 계속 할 수 있으셨겠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다른 신약 성경에 나타난 에녹의 삶을 찾아봄으로써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2) 히브리서에 나타난 에녹의 삶

히 11:5-6,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히브리서 저자는 에녹이 열매가 없어도 전도자의 삶을 신실하게 살 수 있었던 이유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5절,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다.”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거를 받았다.” 6절,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 우리는 본문을 통하여 흥미로운 것을 하나 발견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5장에서는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두 번 강조되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스 11장에서는 에녹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고 두 번 강조되었습니다. 이렇게 “동행”이 “기쁨”으로 단어가 바뀐 이유는 70인역 때문입니다. 70인역은 BC 3세기 경,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번역된 성경입니다. 당시는 알렉산더 대왕이 헬라 제국을 건설한 다음에 부하 장군 4명이 방대한 헬라 제국을 통치할 때였습니다. 그러니까, 헬라어가 그 당시 언어와 문화를 지배할 때였습니다. 이 때, 히브리어 성경이 헬라어 성경으로 번역되었는데, 그 성경 번역 학자 수가 70명이었다고 70인역이라고 불렀습니다. (정확하게는 72명이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어째든 70인 번역 위원은 히브리어 성경에서 헬라어 성경으로 번역할 때, 하나님께서 사람처럼 묘사되는 부분을 모두 바꾸었습니다. 그 중에 한 예가 오늘 본문입니다. 70인역 창세기를 보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And Enoch was well-pleasing to God after his begetting Mathusala ~” “And Enoch was well-pleasing to God, and was not found, because God translated him.”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를 “에녹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더니”로 바꾸어 번역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저자가 히브리서를 기록할 때, 70인역을 참조했기 때문에 이렇게 번역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의미의 가장 근접한 해석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로 바꾸어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히브리서에서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고 기록했습니다. 이것을 거꾸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과 동행하지 못한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질문을 하나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는 믿음은 어떤 믿음인가? 히브리서 저자는 그 핵심을 두 가지로 간략하게 정리했습니다. 6절,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1) 반드시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는 믿음. 2) 반드시 하나님께서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는 믿음. 이것을 믿음의 대상과 믿음의 동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A) 믿음의 대상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왜 이런 믿음이 필요할까요? 하나님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도 열매가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성과가 그 때마다 일어난다면, 하나님의 존재를 더욱 잘 믿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대로 살아도 아무런 성과가 없을 때, 그리고, 그런 삶이 지속될 때, 우리는 정말 하나님의 존재하시는가 의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에녹도 분명히 그랬을 것입니다. 300년 동안이나 하나님의 심판을 전했지만, 사람들은 전혀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은 더욱 부패하고 포악해졌습니다. 곧 지구의 종말이 온다고 예언해도 사람들은 전혀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그런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오랫동안 기도했지만, 그 열매를 보지 못할 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지만, 내 삶은 더 나아지지 않을 때.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다음 부분에서 이에 대한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B) 믿음의 동기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는 믿음은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을 주시는 분이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성경을 주의해서 잘 읽어야 합니다. 많은 분들이 이 부분을,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할지니라”라고 읽습니다. “하나님께서 상 주신다”는 것을 믿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상 주시는 이심”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비슷한 것 같지만, 전혀 다른 것입니다. 본 구절에서 강조하는 것은 상 자체가 아니라 상 주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물 vs 하나님의 성품) 만일, 우리가 본문을 “하나님은 상 주신다”라고 읽으면,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때에 그 상을 받지 않으면,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본문을 있는 그대로 “하나님은 상 주시는 분이시다”라고 읽으면, 하나님의 신실한 성품을 믿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원하는 때에 그 상을 받지 않더라고,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보다 우리에게 상 주시는 하나님께 초점이 맞추어질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예를 한 번 들어 보겠습니다. 여러분에게 손자가 두 명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한 손자는 여러분이 주는 선물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선물만 받으면, 코빼기도 보이지 않습니다. 이 손자는 여러분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직 여러분이 주는 선물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다른 손자는 여러분이 주는 선물보다 선물을 주는 여러분에게 관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손자는 시간만 되면, 여러분 곁에 있고 싶어하고, 여러분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합니다. 이런 인간적인 관계가 쌓이자, 이 손자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에게 좋은 것을 주는 분이라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진정한 기쁨을 주는 손자는 누구입니까? 여러분이 두 손자 중 한 손자와 동행을 해야 한다면, 누구와 동행하고 싶으시겠습니까?

이것은 조금 더 신학적으로 설명드리면, 이런 것입니다. 마스미 토요토미 (Masumi Toyotome) 박사라는 분이 있습니다. 일본에서 태어나 열 살에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신학교와 선교단체에서 활동을 한 분입니다. 이 분이 쓴 책 중에 베스트셀러가 한 권 있습니다. “3 Kinds of Love” 사랑에는 세 종류가 있는데, If 사랑 / Because 사랑 / In Spite Of 사랑입니다. 이 세 가지 사랑 중에서 참 사랑은 “In Spite Of”의 사랑이라는 것이 이 책의 골자입니다. 이것은 오늘 본문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내게 상을 주시면, 내가 하나님을 믿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상을 주시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을 믿겠습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지금 내게 상을 주시지 않아도, 내가 하나님을 믿겠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시간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내게 상을 주실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에녹이 바로 그런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 땅에서 살 동안에는 왕따와 무시를 당했겠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가심으로 에녹이 참된 신자임을 하나님께서 증명해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어떤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습니까?